잔머리의 최후

그때 갑자기 일이 터졌다. 당시 화생방 막장에는 조교 두명이 방독면을 쓰고 커다라 막대를 들고 문을 교차해서 막고 있었다. 화생방을 하다가 뛰쳐 나가는 녀석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웬 덩치 큰 녀석이 순식간에 이 조교 두명을 땅에 메치고 문을 박차고 나간 것이다.

훈련소의 꽃, 화생방

군대나 훈련소 이야기를 하면 항상 등장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화생방이다. 최루가스는 "면역성이 없다"고 하는데 이 최루가스로 범벅이 된채 노래를 부르고 굴러야 하는 것이 화생방이기 때문이다.

훈련소에 입소하면 4주간 훈련일정표가 나온다. 꼭 이 일정표대로 되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이 일정표대로 진행된다. 훈련소에 입소하면 주는 국방수첩에 한쪽에 일주일씩 훈련 일정을 적어 두었다. 한쪽에 일주일이니 두장에 사주치가 기록되어 있는 셈이다.

첫주는 훈련을 받고 두번째 주는 하루 일정이 끝나면 끝난 일정을 밤에 찢는다. 이렇게 함으로서 날짜가 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주 월요일에 이 일정을 찢는 것을 보고 본채만채 했던 동기들도 네번째주 월요일이 되자 모두 내 주변에 둘러 앉았다. 그리고 매일 하나씩 찢을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공포의 화생방

그러나 걱정이 하나 있었다. 바로 '화생방'이었다. 유격훈련도 별문제는 아니고 다른 훈련도 큰 문제는 아니었는데 다들 걱정이 화생방이었다. 그러나 나는 동기들처럼 걱정 하지는 않았다. 화생방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생방을 하기로 한 날 아침 휴지를 자르고 가운데에 치약을 묻혀 두었다. 그리고 이 것을 돌돌 말아 코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말아 두었다.

시위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렇게 한 뒤 이 휴지로 코를 막아 두면 최루가스를 마셔도 상당시간 참을 수 있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시작만 남았다. 다들 떠는 공포화생방. 화생방을 시작하기 전에 인원수를 맞추기 위해 줄을 맞췄다. 그런데 줄을 맞추다 보니 첫번째 줄이 비어 있었다. 당연히 두번째 줄에 있던 녀석이 첫번째 줄로 가야한다.

그런데 공포에 질린 녀석이 나를 첫번째 줄[1]로 밀어 넣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왔기 때문에 나보다는 나이가 서너살 어렸었고 그래서 형인 내가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내가 첫번째 줄로 올라갔다. 연막이 터지고 화생방 막간에 들어섰다. 마치 심하게 기침을 하는 듯 손으로 코를 가리고 준비한 마개로 코를 막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조금 맵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옆에 동기들이 하는 것처럼 죽을 것처럼 굴었다. 자기 목을 조르고 살려 달라는 녀석, 벽에 머리를 박는 녀석, 햇볕을 보고 무조건 달려드는 녀석등 정말 천태만상이었다. 아무튼 이 상황에 군가를 부르라고 해서 군가를 불렀다.

잔머리의 최후

그때 갑자기 일이 터졌다. 당시 화생방 막장에는 조교 두명이 방독면을 쓰고 커다라 막대를 들고 문을 교차해서 막고 있었다. 화생방을 하다가 뛰쳐 나가는 녀석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웬 덩치 큰 녀석이 순식간에 이 조교 두명을 땅에 메치고 문을 박차고 나간 것[2]이다.

녀석이 문을 박차고 나갔지만 나머지는 잘 참았다. 반대쪽 문이 열리고 새로운 공기가 들어오자 모두 문을 나섰다. 콧물을 줄줄 흘리는 녀석, 콧물과 눈물로 범벅이된 녀석등 꼴을 보면 정말 민망했다. 미리 준비한 마개는 들통나면 안되기 때문에 나 역시 코를 푸는 척하면서 마개를 치웠다. 그리고 터진 교관의 한마디.

저 싸가지 없는 새끼들,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어
이따가 새로 터트린 뒤 다시 들여 보내

암담했다. 화생방 중 튀어 나간 녀석 때문에 연대책임을 물은 것[3]이었다. 결국 우리는 쉬지도 못하고 화생방 막장 밑에서 최루가스를 맡으며 남들이 튀어나오는 것을 불안하게 구경해야 했다. 그리고 탄을 다시 터트린 뒤 화생방 막장에 다시 들어섰다.

다른 녀석들은 이미 한번 경험한 일이라 나름대로 노래도 잘하고 구르는 것도 잘했다[4]. 그러나 처음으로 최루가스를 마신 나는 정신이 거의 없었다. 아까 내가 봤던 동기들처럼 손으로 목을 조르고 벽에 머리를 들어받았다.

잔머리의 최후.

이때든 생각이다. 잔머리를 쓰지않았다면 남들처럼 처음에 고생을 해도 두번째는 조금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것 같았는데 다시 문이 열렸다. 그리고 비교적 잘참은 동기들에 비해 이제는 내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됐다. 아무튼 두번씩 들어갔지만 "끝났다"는 안도감이 뒤를 따랐다. 이때 터진 교관의 한마디.

저 새끼들 다른 소대 오면 그때 다시 들여 보내

다른 교관은 모두 중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데 이 교관은 상사 계급[5]장을 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군인정신이 없는 사람에 대해 아주 혐오감을 가진 듯했다. 역시 화생방 막장에서 최루가스를 마시며 불안한 눈으로 다른 녀석들이 튀어 나오는 것을 봤다.

이때는 공포감 때문에 최루가스가 맵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로지 조금 전의 경험을 또 해야 한다는 공포만 남아 있었다. 이때였다. 함께 있던 동기 하나가 눈을 뒤집고 쓰러졌다. 최루가스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놀란 교관이 와서 녀석을 깨웠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야, 이제 화생방 안시킬께 일어나봐

꽤병으로 알고 그런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교관의 이 한마디에도 녀석은 일어나지 못했다. 다급해진 교관은 조교를 부르며 "4소대에 가면 의사하던 녀석이 있으니 빨리 불러 오라"고 했다. 그리고 헐래벌떡 뛰어온 4소대원.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이 녀석의 눈을 보고, 손을 틀고 등을 두드리자 바로 정신을 차리는 것이었다.

녀석이 정신을 차리자 교관도 "더 이상 화생방을 시키다 사고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화생방은 여기서 끝났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추억이겠지만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른다. 그것도 한번도 아닌 두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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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첫번째 줄은 탄을 터트린 뒤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가장 독하다. 그래서 녀석이 나를 밀어 넣은 것이다. 
  2. 지금 기억으로는 전남대 체육과를 나온 녀석이다. 무슨 이유로 공익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힘은 장사다. 
  3. 문을 박차고 나간 녀석은 화생방을 다시 하기 전까지 조교에게 얼차례를 받았다. 
  4. 최루가스는 "면역성이 없다"고 하는데 의외로 처음 마실 때와 두번째 마실 때는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5. 상사인지 중사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꺽새 표시를 한 계급장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