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훈련소 이야기 1 - 입소식 by 도아
알아서 기어
설마 "병역특례를 훈련 시키면서 일반 훈련병과 똑 같이 훈련시킬리는 없다"고 생각한 나는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을 아주 천천히 했다. 당시 입고 있는 옷이 흰옷이라 옷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그러자 조교 한명이 아주 열이 받아서 찾아 왔다.
"이 새끼 일어서"
훈련소 입소
대한민국의 남자 중 군대를 다녀 오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물론 정치권에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많다. 또 재벌의 자녀 중에도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많다. 그러나 대한민국 서민 남자 중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아울러 군대를 다녀 오는 것을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다.
그러나 나는 군대에서 버린 3년[1]은 인생에서 머리가 가장 잘 돌아갈 황금기이기 때문에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상당한 손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예비역들이 항상 하는 이야기는 "군대에서 썩은 머리"였다.
나는 군대를 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특례 보충역으로 병역을 마쳤다. 그러나 군대를 가지 않았으면서도 나처럼 다양한 군생활을 경험한 사람도 드물다. 나는 칼빈 소총부터 M1, M16, K1, K2까지 모두 사용해 봤다. 그 이유는 고등학교 때도 교련을 했고 대학교 때도 교련을 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학교 1학년 때는 문무대에 입소해서 일주일간 군사 훈련을 받았고, 대학교 2학년 때는 전방에 입소해서 며칠간 철책 근무도 했다[2]. 마지막으로 군에서 훈련을 받은 것은 서른살 때였다. 당시 나는 특례 보충역이었다. 내가 특례 보충역으로 가기전까지 특례 교육은 보통 출퇴근하면서 받았다. 그러나 내가 특례를 받을 때는 군부대에 입소해서 받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언제 훈련통지가 나올 것인지 궁금했는데 훈련통지서가 나왔다. 훈련장은 삼척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다른 특례병들과는 다르게 나는 입소할 때까지 머리를 깍지 않았다. 어차피 입소하면 깍아 줄텐데 굳이 깍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훈련소 가는길
시간을 맞추기 위해 집에 이야기하고 하루 전날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훈련소로 향했다. 훈련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앉아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그런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처럼 "머리를 기르고 온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머리를 깍지 않고 갔다고 해서 죽이기야 하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나랑 똑 같이 머리를 기른 녀석이 걸어 오고 있었다. 누군가 싶어서 보니 고등학교 친구였다. 정확히는 고등학교 친구라기 보다는 고등학교 동창의 친구**였다. 그러나 한때 상당히 친하게 지내던 녀석이라 일단 반가웠다. 모 고등학교 음성서클 회장으로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상당한 말썽을 피우던 녀석이었는데 혼인을 한 뒤 아주 착실한 가장으로 변신한 녀석이었다.
둘이 가면서 처음에 한 이야기는 아는 사람 한명이라도 더 있으면 좋으니까 '서로 떨어지지 말자'는 것이었다. 훈련소 문이 열리고 줄을 맞춰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훈련소 고개를 넘자 마자 바로 발생했다. 고개를 넘자 마자 바로 나온 훈령은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이었다.
알아서 기어
설마 "병역특례를 훈련 시키면서 일반 훈련병과 똑 같이 훈련시킬리는 없다"고 생각한 나는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을 아주 천천히 했다. 당시 입고 있는 옷이 흰옷이라 옷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그러자 조교 한명이 아주 열이 받아서 찾아 왔다.
이 새끼 일어서
당연히 일어서 조교를 쳐다봤다. 그러자 조교는 내 얼굴을 힐끔 보더니 다시 "앉어" 하는 것이었다. 미루어 짐작하기로는 훈련병 중에 박사과정을 마친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긴머리 때문에 나이가 들어 보였기 때문으로 보였다.
연병장에 줄을 서고 연대장의 훈시가 이어졌다. 그리고 모든 훈련소에서 하는 선착순이 시작됐다. 선착순으로 뜀박질을 시키고 "낙오자는 우찌 우찌 하겠다"는 협박이 이어졌다. 그러나 군생활에 대해 이미 알만큼은 아는 나로서는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잔뜩 쫄은 아이들이 죽으라고 달릴 때 나는 가장 뒤쳐져서 달렸다. 그러자 터지는 조교의 한마디.
야 이새끼야 안뛰어?
당시 훈련병은 박사과정 병역특례(대부분 30에 가깝다), 일반 병역특례(20대 후반), 공익(20살 전후)이었다. 이런 훈련병하고 체력으로 겨루어 봤자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처음 연병장을 돌 때는 아주 천천히 돌았다.
그리고 두번째 바퀴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천천히 뛰면서 체력을 비축[3]했다. 그리고 세번째 정말 죽으라고 달렸다. 문제는 골대, 골대를 돌면서 같이 뛰는 녀석이 밀치는 바람에 골대에 부딪혀 넘어진 것이다. 상황이 이런 상황이었지만 세번째는 전략대로 등수에 들었다. 그런데 내가 등수에 들자 바로 내 앞으로 숨어 들어온 녀석이 있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친구 녀석이었다.
처음부터 죽으라고 뛰어다닌 녀석은 이미 얼굴이 샛노랗게 변했고 더 뛸 힘이 없는 듯했다. 어차피 같이 하기로 했기 때문에 녀석을 살짝 끼워줬다. 문제는 녀석 때문에 내가 짤려서 또 운동장 한바퀴를 더 돈 것이다. 전략적으로 세번째에 거의 모든 힘들 다 쏟았기 때문에 네번째 운동장을 돌면서 이제는 힘이 없었다. 막상 운동장 한바퀴를 돌아오니 이제는 내 상태가 친구 녀석과 같아졌다.
하늘이 노랗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숨은 목까지 차오르고 하늘이 빙빙 돌았다. 여기서 한바퀴를 더 돌렸다면 아마 뛰다가 쓰러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나 다행이 네번째를 끝으로 각각의 소대를 할당했다. 친구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친구 녀석의 뒤에 섰지만 또 내 앞에서 잘려 나갔다.
아무튼 이미 두번의 군생활이 있었지만 이번이 가장 빡빡하다는 것을 느꼈다. 대부분 병역특례였기 때문에 다른 병역특례도 같은 생각이었다. 선배들의 이야기처럼 장난삼아 훈련을 받으면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입소식 부터 굴렀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씻고 머리를 깍았다. 그런데 이제는 우습게 안 훈련소 생활이 걱정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