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을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조직을 유지하는 것은 시스템이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는 시스템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사람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시스템이다.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사람이라면 그 조직은 유지하는 것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후진사회는 사람이 필요한 곳에는 시스템을 두고 시스템이 필요한 곳에는 사람을 둔다. 숭례문 화재, 비정규직 문제는 사람이 있어야 할곳을 시스템이 있어서 발생한 문제다. 반면에 용산참사는 시스템으로 진행해야 할 문제를 사람의 판단으로 강행처리해서 발생한 문제다.

책임없는 사회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런 일들이 발생해도 어느 누구도 책임지 않는다는 점이다. 6명의 목숨을 앚아간 에 대한 검찰의 결론은 간단하다.

경찰 무협의, 철거민 유죄, 화재원인 모름, 의혹 조사대상 아님

주로 다루는 주제가 IT이지만 그외에 자주 다루는 주제 중 하나는 비판이다. 기독교 비판글에 항상 달리는 의견이 하나있다. 바로 소수의 기독교도를 보고 다수의 기독교도를 평하지 말라는 글이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흙탕물을 읽으킨다는 이야기이다.

과연 그럴까?
기본적으로 미꾸라지 한마리가 흙탕물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그 물이 흙탕물이니 미꾸라지가 사는 것이다. 깨끗한 물에는 미꾸라지가 살지 못한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흙탕물을 일으키는 것을 막고 싶다면 미꾸라지를 잡는 것이 아니라 물을 바꿔야 한다. 한 사람이 잘못했으면 그 사람의 잘못 보다는 그 공동체 전체를 비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래야 개인의 죄로 치부하고 그 공동체가 똑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 공동체가 책임을 느끼고 자정 노력을 할 수 있다.[1].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책임 지는 사회

어디서 읽었는지 모르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트럭을 몰고가던 운전자가 갑자기 도로에 뛰어든 소년을 치었다. 그런데 이 소년은 가난해서 병원비를 낼 여력이 없었다. 또 단순한 일을 하며 하루 하루 근근히 연명하는 무보험의 트럭 운전자도 소년의 병원비를 낼 형편이 아니었다.

만약 상황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면 당연히 소년은 치료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 경우 배상책임을 자동차 회사에 묻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소년의 치료비를 내야하는데 치료비를 낼 수 있는 곳은 자동차를 만든 회사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미국은 "책임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묻는다"는 것이다.

의 책임도 마찬가지다. 그 자잘못을 따지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 같은 맥락에서 처리되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제2, 제3의 용산참사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용산참사에서 책임을 물을 사람은 많다. 먼저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경찰을 진두지휘한 경찰청장이 있다. 용역깡패를 고용한 조합, 그 조합에 돈을 댄 시공사(삼성), 용역깡패를 부린 용역회사.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런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근본대책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것이야말로 대통령 책무"

맞는 말이다. 그리고 정말 이렇게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책임 질 수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순서다. 그래야 와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공직이란 명예만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책임이 더 무거운 자리다. 자본가란 돈만 버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추구한 영리를 사회에 환원하는 자리다[2]. 이 중 가장 무겁고 무거운 자리가 바로 대통령이다.

관련 글타래


  1. 이것은 기독교든 민주노총이든 어떤 단체든 마찬가지다. 또 이 말은 과로 공을 덥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2. 우리나라 대기업을 대기업이라 하지 않고 재벌이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