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공파 8대손

나는 송정공파 8대손이다. 아버님의 8대조 할머니께서 유복자로 7대조 할아버지를 낳으셨다고 한다. 송정공파 자체가 아주 미미한 소파이고 당시에는 명확한 계보를 찾기 힘들었다. 따라서 "보나 마나 노비가 임신한 뒤 도망처서 낳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지만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송정공파에서 계보를 정리하던 중 아버님을 찾아 오셨고 그 덕에 내 족보도 명확해 졌다.
<사진: 김해 김씨 종문>

국내 최대 성씨

김씨는 국내 최대 성이다. 2000년 1000만명 정도가 김씨인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의 4분의 1이 김씨인 셈이다. 김씨 중 가장 많은 본관은 김해이다. 2000년 김해김씨의 인구는 412만으로 전체 김씨 중 40%를 차지하며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에서도 10%나 차지하는 대성이다. 따라서 동성동본의 혼인을 금할 때 최대 피해자 중 하나는 바로 김해김씨였다.

따라서 나도 학창 시절 소개팅을 나가 만난 아가씨 성이 김씨면 항상 본관을 묻곤했다. 그 이유는 김씨라고 하면 10명 중 4명은 본관이 같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동성동본의 혼인을 금하는 것이 위헌 판결을 받았다. 또 2001년 12월에 개정된 대법원호적예규 제604호에 제2조에 "시(구)·읍·면의 장은 민법 제809조 제1항에 불구하고 동성동본인 동일남계혈족 사이의 혼인신고도 이를 수리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 것으로 봐서 요즘은 동성동본의 혼인도 가능한 것 같다.

그러나 역시 법과는 분리되어 운영되는 것이 관습이다. 법으로는 허락할지 몰라도 문중에서는 아직도 동성동본의 혼인을 반대하고 있다. 김해김씨는 아시다 시피 허씨(김해, 시산, 태인등 거의 모든 허씨)와는 같은 성씨다. 따라서 김해김씨와 허씨는 혼인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생의 친구도 바로 이 관습때문에 사귀는 사람과 헤어진 적이 있다. 그러나 김씨, 허씨와 달리 김씨와 혼인할 수 없는 성씨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이씨다.

인천 이씨

나도 허씨만 혼인할 수 없는 것으로 알았는데 의외로 인천이씨[1]혼인도 금지되어 있다. 그 이유는 인천이씨는 태인허씨에서 갈려 나온 성씨기 때문이다. 다음은 뿌리를 찾아서에 나온 인천이씨에 대한 설명이다. 원래 "태인허씨였지만 당황제가 황제의 성씨를 하사해서 이씨가 되었다"고 한다.

시조 이허겸(李許謙)은 김해김씨의 시조인 가락국(駕洛國, 伽倻) 수로왕(首露王)의 후손으로, 수로왕의 맏아들은 김해 김씨를 잇고 두아들은 어머니 허태후(普州太后, 보주태후)의 간곡한 요청으로 왕비의 성을 따라 허씨가 되었다.

그의 후손 허기(許寄)가 755년 신라 경덕왕 때에 아찬의 벼슬로서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다음해에 안록산의 난으로 인하여 귀국하지 못하고 예의로써 당나라 현종을 따라 촉나라(蜀國 )로 가서 어려움과 위험을 함께 하면서 힘을 다하여 황제의 호위에 힘썼다.

다음 해에 난이 평정되자 황제를 따라 서울로 되돌아오니 황제가 가상히 여겨 시를 주어 칭찬하고 거듭 황제의 성인 이씨를 하사하였다. 4년만에 황제의 서신을 받들어 귀국하니 경덕왕이 그간의 공이 높고 노고가 많았음을 칭찬하며 높은 벼슬을 더하여 소성백(邵城伯)을 봉하였다. [출처: 뿌리를 찾아서]

이런 때문에 김씨, 허씨, 이씨의 종친회는 가락중앙종친회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어 있다.

송정공파 8대손(한림공파 지파)

나는 송정공파 8대손이다. 8대조 할머니께서 유복자로 7대조 할아버지를 낳으셨다고 한다. 송정공파 자체가 아주 미미한 소파이고 당시에는 명확한 계보를 찾기 힘들었다. 따라서 "보나 마나 노비가 임신한 뒤 도망처서 낳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지만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송정공파에서 계보를 정리하던 중 아버님을 찾아 오셨고 그 덕에 내 족보도 명확해 졌다.

김씨와 이씨가 혼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매형때문이다. 매형의 성씨가 이씨였기 때문이다. 매형에 따르면 이씨의 집성촌이 대구에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혼인을 하려고 하면 대구에 있는 문중에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 허락을 받기 위해 문중을 방문했을 때 다행히 김해김씨와 이씨가 동성동본이라는 것을 아는 어른(실제로는 이런 혼인을 반대하시는 어른)께서 마침 출타 중이라 문중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매형은 인천이씨가 아니라는 점이다.

관련 글타래


  1. 인천의 옛 이름은 '연안'이다. 따라서 인천 이씨는 연안 이씨와 같은 갈래가 된다. 따라서 연안 이씨와도 혼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