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

포커를 이야기하면 꼭 등장하는 말이 '포커페이스'이다. 즉 내색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포커를 치다보면 꼭 얼굴이 아니라고 해도 가진표를 티내는 습관이 있다. 좋은 표가 들어오면 서두르는 사람, 꼭 한번씩 다른데를 보는 사람, 코를 킁킁 거리는 사람. 평상시에는 바닥에 두고 표를 까다가 꼭 들고 조이는 사람 등. 따라서 초반에는 사람들의 이런 습관을 찾느라 보통 어느 정도 돈은 잃고 시작하는 편이다.

우리 모두는 인생 역전 드라마를 꿈꾼다. 이런 사람들은 오늘도 로또를 찾는다. 또 경마장을 찾는다. 그러나 남는 것은 허탈함. [그림출처]

도박, 내 젊은 날의 초상

누구나 인생 역전 드라마를 꿈꾼다. 이런 꿈은 허황된 꿈이라고 어른들이 이야기 해 주어도 젊은 시절 인생 역전 드라마를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착실하게 직장을 다니며, 이런저런 저축을 하며 계획적인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로또를 산다. 바로 수십 억이라는 한방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유독 땅에 투자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이유는 강남 졸부 신화로 비롯한 인생 역전 드라마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인생 역전 드라마는 누구에게나 찾아 오지 않는다. 이런 드라마는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운이 따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없던 시절 벌인 노름 한판이 인생 대역전의 발판을 마련해준 사례가 있다.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친구 때문에 모대학교 수학과에 놀러 간적이 있다. 당시 학생회 간부였던 친구는 학회 사무실에 모여 당시 가장 인기가 있었던 포커를 치고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화투, 포카를 비롯 각종 도박에 열을 쏟았다. 그러나 대학교 2학 때부터는 거의 도박을 하지 않았다. 별 미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민둥민둥 녀석들이 하는 포커를 구경하고 있었다.

도박은 한때 나를 표현하는 아이콘이었다. '도리짓고땡'을 빼고는 거의 모든 도박에 능했다.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밑장 빼기'에 능했고 손바닥 가운데에 화투 한두장을 숨기는 것도 별 문제가 없었다. 따라서 도박을 하면 항상 따는 것은 아니지만 따는 때가 많았다. 따도 조금 따는 것이 아니라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는 거금을 따는 때가 많았다.

이런 것을 익히 아는 친구는 계속 구경만 하지말고 심심하니 포커판에 끼라고 권유했다. 포커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포커는 사람이 많아야 재미있다.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고 다른 사람들도 계속 권유해서 오랜 만에 카드를 잡았다. 화투는 크기가 작아 숨기기 용이하기 때문에 속임수 쓰기도 쉽다. 또 짓고땡, 고스톱과 같은 도박은 실력 보다는 운이 많이 좌우한다. 반면에 포커는 카드 크기가 커 속임수를 쓰는 것도 쉽지 않고 또 운 보다는 실력에 많이 좌우된다.

포커, 라스트 게임

포커를 이야기하면 꼭 등장하는 말이 '포커페이스'이다. 즉 내색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포커를 치다보면 꼭 얼굴이 아니라고 해도 가진표를 티내는 습관이 있다. 좋은 표가 들어오면 서두르는 사람, 꼭 한번씩 다른데를 보는 사람, 코를 킁킁 거리는 사람. 평상시에는 바닥에 두고 표를 까다가 꼭 들고 조이는 사람 등. 따라서 초반에는 사람들의 이런 습관을 찾느라 보통 어느 정도 돈은 잃고 시작하는 편이다.

당시 그 학과에서 가장 포커를 잘친다고 소문이 난 녀석인데 이 녀석도 표가 좋으면 슬쩍 다른 사람의 표를 보는 습관이 있었다. 계속 연달아 몇 판을 잃자 녀석은 또 모든 판돈을 자기 판돈으로 알고 넌즈시 "우리는 개평없어요. 잘해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개평없는 놀음판, 그것도 재미로 치는 놀음판에 개평이 없다고 하니 조금 의외였다. 친구에게 물어 보니 다른 사람은 개평을 주는데 이 녀석은 개평이 없다고 한다.

포커는 상당히 매력적인 도박이다. 42장이 만드는 확률 게임에 불과한 것 같지만 확률 게임이 아니라 심리 게임이다. 따라서 포커에서 중요한 건 내 표가 얼마나 좋으냐가 아니다. 바로 얼만 큼 좋아 보이느냐다. 그래서 습관이 중요하다. [그림출처]

상대의 습성을 이미 파악했기 때문에 녀석이 레이스를 걸면 따라 걸었다. 물론 마지막에 녀석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때리면 미련없이 죽었다. 이렇게 약올리기를 몇판... 이번에는 내가 레이스를 걸면 녀석이 따라 붙었다. 그리고 막팍에 판돈 전부를 걸면 또 따라 걸었다. 결과는 당연하지만 내 압승이었다. 채 한시간이 되지 않아 녀석 판돈은 거덜이 났고 지존의 자존심을 뜨내기한테 빼았긴 녀석은 "기다려"라고 하면서 학회 사무실을 나갔다.

기다리는 일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딴돈을 조금 잃어주면서 녀석을 기다렸다. 도무지 그 많은 돈이 어디에서 났을까 싶지만 당시로는 정말 큰 돈인 몇십만원을 들고 왔다. 도박을 해보면 알 수 있지만 도박에서는 타짜가 아니라면 돈 많은 놈이 이긴다. 예전에 도리짓고땡을 할 때였다. 모든 판돈을 날린 친구 녀석이 금고 문을 열더니 수백만원 뭉치돈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항상 내가 가진 판돈 만큼 돈을 걸었다. 결과는? 모두 털렸다. 아무리 운 좋다고 해도 판돈만큼 계속 걸다보면 한번은 지게되고 그 한번을 지게되면 모든 판돈을 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커는 다르다. 이런 방식으로 걸면 죽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즉 확실한 판만 약을 올려 가면서 따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60만원이 큰 돈이기는 하지만 짓고땡을 할 때 친구처럼 무한정 배팅할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결국 또 한시간이 걸리지 않아 녀석을 올인 시켰다. 그토록 자신만만하던 녀석 표정은 어두워졌고 본전 생각에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도박판의 빚은 주지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녀석에게 돈을 빌려 주는 사람도 없었다.

도박은 절망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그 절망은 때론 희망이 될 수도 있다. 삼성 중공업 기름 유출 사건도 그렇게 되기 바란다. [그림출처]

결국 다른 사람들이 모두 올인되고 나와 다른 두 사람이 남았다. 세사람이 하는 포커는 정말 재미없다. 또 끝도 없다. 결국 계속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딴 돈으로 룸살롱에서 술을 살테니 그만하자고 제안했다. 학창시절에는 가볼 수도 없는 룸살롱이라 이 제안을 흔쾐히 받아들였다.

포커를 했던 6명 중 한 사람은 일이 있어서 빠지고 돈을 잃은 녀석은 돈을 잃은 허탈한 마음에 빠졌다. 4명과 함께 룸살롱에서 진탕 놀았다. 어차피 돈을 따도 습관상 '절반은 개평'으로 준다. 따라서 당일 딴 돈의 절반을 술값으로 내려고 했다. 그런데 하도 진탕 놀다보니 술값은 절반을 넘어 60만원 정도 나왔다. 여기에 여관비, 다음 날 해장까지 모두 샀지만 그래도 남은 돈은 30만원이 넘었다. 쉽게 번 돈이라 쉽게 쓰고 남은 돈도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의 술을 사주는데 모두 쓴 것 같다.

도박, 절망의 다른 이름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아마 대학원에 다닐 때였던 것 같다. 모대학에 다니던 친구 녀석에게 연락이 왔다. 누가 나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술한잔 거나하게 살테니 나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여친과의 달콤한 밀회까지 접어 두고 녀석을 만나러 갔다(당시에는 술, 도박, 그 다음이 여자였다). 그런데 의외로 술을 사겠다는 녀석은 예전에 도박을 하다가 나에게 판돈을 모두 날린 그 녀석이었다.

녀석: 나 알겠니?
도아: 글쎄.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녀석: 왜. 예전에 학회 사무실에서 포커를...
도아: 아. 너구나. 그때는 미안했다.

도아: 네가 개평이 없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한 것이니까.
녀석: 아니. 나도 그랬으니까 원망할 생각은 없고.
녀석: 내가 술을 살테니까, 너는 진탕 마시기나 해라.

그러더니 녀석은 녀석 차로 우리를 태웠다. 차종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랜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20대 중반에 그랜저를 몰고다니는 녀석이 조금 부러웠고 또 의외였다. 술 마시며 녀석에게 다가온 인생 역전 드라마를 들을 수 있었다.

녀석은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을 왔다. 나에게 날린 돈은 녀석 다음 학기 등록금 중 일부였다. 당시 등록금은 80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혹시 몰라서 20만원을 빼고 나머지 60만원을 도박에 쏟아 부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돈을 모두 날리자 녀석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도박을 한 날 저녁에 비가 무척 많이 내렸는데 이 비를 맞으면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기로 맹세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회한들 이미 쏘아버린 화살이요, 쏟아진 물이라! 죽은 자식 불알 만지듯 후회했다고 한다. 녀석 힘으로는 그 큰돈을 마련할 수도 없고 부모님께 다시 손을 벌리기도 힘들어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학기별 복학도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휴학을 하면 1년을 쉬어야 하는 때라 주유소를 아주 착실히 다닌 모양이었다.

하숙비를 줄이기 위해 주유소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주유소의 굳은 일, 험한 일까지 도맡아 했다고 한다. 이렇게하다 보니 주유소 아저씨의 신망을 얻게되었고 채 일년이 되지 않아 주유소 금고까지 맡게되었다고 한다. 주유소에서 착실하게 일하고 꼬박 꼬박 받은 월급을 저축한 덕에 1년치 등록금을 모을 수 있었다. 복학할 때가 되자 주인 아저씨는 무척 아쉬워 하면서 착실하게 일한 댓가로 당시로는 큰 돈인 50만원을 더 얹어준 모양이었다.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 사람이 할일은 다해야 운도 따라 준다. 창조한국당도 하루 속히 내홍을 이기고 일어났으면 한다. 사람이 엉망이다가 대통령이 됐으니 최소한 창조한국당을 원내정당으로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복학 수속을 밟고 부모님 뵈러 시골에 갔다 온 사이 주유소에 난리가 났다는 걸 알았다. 주인 아저씨가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해 보니 간암 말기였다. 워낙 건강한 분이라 건강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알게 모르게 큰 병을 키운 모양이었다.

목숨이 오늘 내일 하는 상황에서 주유소 아저씨가 제안을 해왔다고 한다. 주유소 운영권을 줄테니 5년간 아저씨 집으로 수익 절반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복학도 중요하지만 자신에게 워낙 잘 해준 아저씨이고 아저씨가 돌아 가시면 먹고 살길이 막막하기 아저씨 가족 때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흔쾌히 응락했다고 한다. 주인 아저씨는 약 삼개월 뒤에 돌아 가시고 이때 처음 주인 아저씨 딸을 봤다고 한다.

그 뒤 주유소를 운영하던 녀석은 수완을 발휘한다. 그래도 먹물을 먹었다고 녀석이 생각한 것은 주유소 서비스 개선이었다. 요즘은 주유소에서 휴지 한통 정도는 그냥 주는데 당시에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드물었다. 이처럼 주유소를 방문한 사람에게 필요한 물품을 제공했다. 여기에 한술 더떠서 요즘처럼 쿠폰을 발행해서 사람을 모았다. 그리고 채 삼년이 되지 않아 이런 주유소 두개를 더 인수할 수 있었다. 이렇게 3년간 열심히 일하면서 자연스레 주인 아저씨 딸과도 친해졌다고 한다.

그러던 중 주인집에서 주유소 소유권을 넘겨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주인 아주머니와 이야기 하던 중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바로 주인 아저씨 딸과 혼인해서 데릴 사위로 들어 오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불감청(固所願)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고 바라고 바라던 일이지만 시골 촌놈의 입장에 말도 꺼내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돌아가신 아저씨의 안배였다고 한다.

'주유소 운영권을 주고 5년간 수익 절반을 집으로 착실히 보내면 더 이상 볼 것 없으므로 녀석을 데릴 사위로 맞아 재산을 물려주라고 유언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녀석은 네살 연하의 주인 아저씨 딸과 혼인을 했고 주유소를 비롯한 주인 아저씨의 재산을 물려받았다(물론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부부의 재산이다). 처음에는 주유소를 전재산으로 알고 있었는데 굳이 주유소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부자였다고 한다. 강남 졸부지만 돈의 유용성과 활용성을 알고 다른 졸부와는 달리 검소한 생활을 하던 분이라고 한다.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 폴 포츠. 그러나 그의 인생 역전은 허황된 꿈이 아니라 매순간의 노력이었다.[그림출처]

소설, 인생의 또 다른 이름

아무튼 이 일로 녀석은 소문난 갑부는 아니라고 해도 남들이 평생을 벌어도 벌 수 없는 재산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이런 인생 역전 드라마를 펼 수 있도록 한 사람이 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고 한다. 20대이지만 짙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머리를 뒤로 넘긴 녀석은 한껏 거드름을 피며 자신의 인색 역전 드라마를 마무리했다.

도아: 너 나한테 술사려고 전화한거 아니지?
녀석: 그럼. 니가 그 험한 꼴을 당했으면 가만있었겠니?

도아: 그래도 복수는 아름답게 하는구나.
녀석: 우리 집에도 놀러와 처 친구 중 정말 예쁘게 생긴 애가 있거든.

도아: 그래?
녀석: 구명만 시켜줄께...

어찌 보면 인생 역전 드라마는 매순간 우리에게 오는 것일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인생 역전 드라마를 손에 쥐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일 뿐. 인생 역전 드라마는 허황된 꿈이 아니라 매순간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 같은 얘기는 소설이다. 내가 겪은 일과 들은 일로 꾸민...

진실을 알려면 Ctrl-A를 누르세요.

관련 글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