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와 피라미드 - 그 깊고 짧은 관계 by 도아
피라미드
'판매 방식만 보면 다단계나 피라미드 모두 비슷하다'. 다만 다단계는 교체할 필요가 전혀 없는 엔진 오일이라는 아주 '우수한 제품'*과 이 오일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 라인'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피라미드는 판매 방식은 같지만 우수한 제품도 이런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 라인도 가지고 있지않다. <사진 출처: 수백명 수백억 뜯어낸 다단계 사기사건 2제>
다단계
흔히들 다단계와 피라미드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다단계와 피라미드는 판매 방식이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르다. 다단계와 피라미드를 구분하는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다단계와 피라미드를 구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제품과 생산 시설의 유무이다.
만약 교체할 필요가 전혀 없는 엔진 오일을 개발했다고 치자. 아무리 성능이 우수한 엔진 오일이라고 해도 유통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 엔진 오일을 팔아 성공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이다. 설사 유통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원가 5000원의 오일은 많이 받아야 6000원을 받기 힘들다.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엔진 오일을 팔았다. 그런데 엔진 오일이 워낙 우수하기 때문에 엔진 오일을 사간 사람들이 엔진 오일을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팔아 주었다. 이렇게 엔진 오일을 다시 팔아 준 사람이 고마워 이 사람들에게 일정액의 수수료를 지불했다. 또 엔진 오일을 팔아준 A를 통해 A'가 다시 엔진 오일을 팔아 주는 것을 보고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A'의 수수료의 일부를 A에게 덤으로 주었다.
원래의 가격이 10000원이고 생산 원가가 5000원이라고 치면 A가 팔면 1000원을 주고, A'가 팔면 A'에게 1000원, A에게 100원을 준다. A''가 팔면 A''에게 1000원을 주고 A'에게는 100원을 주고 A에게는 10원을 준다. 이런 방식으로 판매하면 A가 물건을 팔면 나에게는 4000원의 이익이 생기고 A'가 물건을 팔면 3900원의 이익이 생긴다. 또 A''가 물건을 팔면 3890원의 이익이 생긴다. 즉 이 방식은 물건을 생산한 생산자, 또 물건을 판매한 A, A', A'' 모두에게 이익이된다. 특히 생산단가가 5000원인 물건을 5000원의 마진이 붙이면 실제 아주 싼 가격이 된다. 따라서 이 다단계 판매방식은 유통 마진을 생산자, 판매자, 구매자 모두에게 분배하는 어찌보면 상당히 혁신적인 판매방식인 셈이다.
최상위 단계에 있는 사람은 하위 단계에 있는 사람이 판매한 수수료의 일부가 자신의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하위 단계의 회원이 많아지면 많아 질 수록 상위 단계에 있는 사람의 수익은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다단계 판매 방식의 대부분은 무한 계층으로 하위 단계를 두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각 단계에 적정한 마진(예: 단계별 10%)을 두면서 하위 단계의 이익을 보장하려면 단계수를 무한대로 둘 수 없기 때문이다.
피라미드
'판매 방식만 보면 다단계나 피라미드 모두 비슷하다'. 다만 다단계는 교체할 필요가 전혀 없는 엔진 오일이라는 아주 '우수한 제품'*과 이 오일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 라인'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피라미드는 판매 방식은 같지만 우수한 제품도 이런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 라인도 가지고 있지않다.
피라미드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국적을 알 수 없는 싸구려 제품을 고가에 판매하는 때가 많다. 자석요처럼 그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들이 그 주류를 이루며 시중에서 10만원대의 제품을 몇 백만원에 파는 것이 일반적이다. 생산 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고 제품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제품은 일반인에게 판매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즉, 제품을 써보고 제품이 좋아서 권하는 것이 아니라 상위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 물건을 팔아야하고 따라서 일가 친척에게 강매하거나 스스로 구매하는 때가 많다. 그리고 더 이상 하위 단계를 만들지 못하면 본인 스스로 구입한 물건 비용만 탕진하게된다. 따라서 피라미드는 물건의 판매 보다는 자살골로 회비를 납부할 회원을 모집하는데 더 열심히다.
반면에 다단계 회사는 자신들의 주력 상품이 있다. 현재 가장 유명한 다단계 회사는 아마 암웨이 일 것이다. 암웨이의 제품은 아주 우수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을 속일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다. 한때 어머님도 암웨이 제품을 자주 사셨다. 하루는 본가에 갔는데 그 동안 보지 못하던 암웨이 치약이 있었다. 어머님께 여쭈어 보니 '미백 기능이 아주 탁월한 치약으로 암웨이 치약으로 양치를 하면 입안이 개운하고 이가 하얗게 된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암웨이 치약으로 양치를 해보니 정말 입안이 개운하고 이가 하얗게 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양치한 뒤 계속 지울 수 없는 느낌은 이 치약으로 양치를 하면 꼭 이가 갈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암웨이 치약을 쓰지 말라고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암웨이와 코리아나
그 뒤 보도된 뉴스에 따르면 내 느낌은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었던 것으로 판명되었었다. 암웨이에서 판매한 치약에 연마제가 지나치게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뉴스였다. 그러나 이 암웨이를 피라미드가 아니라 다단계로 보는 이유는 암웨이 역시 사람이 혹할 수 있는 제품과 이 제품을 생산하는 생산라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암웨이가 외국계 회사라면 국내에서도 다단계 판매를 통해 성장한 회사가 있다. 바로 코리아나 화장품이다. 예전에는 Koreana라는 이름이었지만 이 회사의 지나친 다단계 영업이 도마에 올라 자주 기사화되자 이 회사는 다단계 판매 방식을 바꾸고 회사 이름도 Koreana에서 Coreana로 슬그머니 바꿨다[1].
뜬금없이 다단계와 피라미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다단계와 피라미드에 빠진 사람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마치 절대적인 진리인양 신봉하는 사람을 의외로 많이 봤기 때문이다.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어머님께서 매형이 한달에 2천만원씩 벌게됐다고 하셨다. 무슨 얘긴이지 들어보니 전형적인 피라미드였다. 매형이 이 피라미드 회사에 취직한 뒤 우리집에서는 거의 100만원하는 연수기를 구입[2]했었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황당한 보안경
보안경 얘기는 정말 황당했다. 미국에서 개발된 특수 보안경으로 이 보안경을 설치하면 TV 화면이 선명해지며 3차원으로 보인다고 한다. 따라서 일단 이 보안경을 가가호호 방문해서 한달만 써보라고 하고 보안경을 설치한 뒤 한달 뒤 보안경을 수거해 가면 선명한 3차원 화면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상당히 고가인 보안경을 구입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3차원 영상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알 수 있지만 3차원 영상은 처음 촬영할 때부터 일반 카메라처럼 단안 렌즈가 아닌 양안 렌즈로 촬영을 해야 한다. 아울러 이렇게 촬영된 영상이라고 해도 입체 안경을 써야만 입체로 보인다. 특수한 전자 장치를 이용해서 2차원 영상을 3차원 영상처럼 바꾸고[3] 입체 안경을 써서 3차원으로 본다면 이해를 하겠지만 단순히 보안경 하나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는 이야기라는 것을 설명해도 도무지 받아드리지 않았다.
작년인지 제작년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예전에 이런 보안경을 팔겠다고 한 생각이 나는지 물어봤다. 재미있는 것은 아예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보안경으로 그런 것이 가능하겠느냐고 나에게 되묻는 것이었다.
이 것이 바로 피라미드이다. 빠져 있을 때는 누구의 눈에나 보이는 사실이 보이지 않는 것.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돈을 피라미드 판매업체게 퍼다주는 것이다. 그래서 피라미드는 그 폐해가 훨씬 심하다. 때로는 가족 자체를 사라지게할 수도 있다.
- 암웨이나 코리아나 모두 다단계이지만 순순한 다단계라기 보다는 피리미드형 다단계이다. 제품의 판매보다는 하위 회원의 확보에 더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
- 벌써 15년 전의 이야기이다. 당시 백만원이면 정말 큰 돈이었다. 그런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연수기의 핵심이라는 필터의 원가는 몇천원에 불과하다. 시중에서 연수기 필터를 구입한 뒤 수도에 필터를 직접 연결해도 연수기와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연수기를 판매하는 피라미드 판매원은 연수기 필터가 정말 좋은 것이고 따라서 연수기가 백여만원씩 간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모두 거짓뿌렁이다. 백만원짜리 연수기나 백만원짜리 정수기나 모두 비슷한 사기이다. ↩
- 당시 뉴스에 따르면 2차원 영상을 3차원 영상으로 변환해주는 고가의 장비가 개발됐다는 소식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