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았을 것이다. 영화도입부의 전쟁씬은 전쟁영화의 백미라고해도 틀린말이 아닐 것이다. 나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고서야 전쟁이 무었인지 알게되었다. 동료와의 전우애, 적에대한 인도주의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전쟁에 대한 환상을 깨준 영화, 그 영화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였다.

앞도적인 도입부와는 달리 나머지는 그렇고 그런 미국식 영웅주의가 계속된다. 즉,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위해 특수부대 대원 대부분이 죽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계속된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한사람을 구하기 위해 몇사람이 죽어야 한다면 구하지 않는 것이 이득이 아닐까?

산수라면 틀림없이 구하지 않는 것이 이득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산수를 사용한 영화가 상당히 많다. 몇년전에 개봉한 브렉호크 다운도 마찬가지이다.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산수가 가능한 것일까?

오늘날의 미국이 있게한 원동력을 두가지로 본다. 첫번째는 미고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이고, 두번째는 미국 서민의 건전한 시민의식이다. 이 두가지가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초강대국의 면모를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탱크로 깔아죽이는 옆기적인 나라, 이유없이 사람을 죽이고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않는 나라 그런 나라 또한 미국이지만 아직까지 망하지않는 이유는 이런 정신이 아직까지 살아있기 때문이다. 지난번 미선/효순양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실제 범죄자라고 해도 자국민을 우선 보호하는 나라가 미국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두 영화는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자국민을 구출하려는 미국 정부의 표면적 의지를 담은 영화이며, 이번 이라크전에서도 미국의 이러한 표면적 의지는 분명히 입증되었다.

그러면 우리 정부는 어떨까?
분명히 존재하는 육군 포로를 아직까지 없다고 하며 남들은 납북자의 시신까지 찾아오는데 우리 정부는 생사확인 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김선일씨의 피납 소속을 듣고 내가 한 얘기는 딱 한가지이다.

"죽었다!"

김선일씨 가족이나 김선일씨 본인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피납 됐다면 살 수 있는 희망은 버려야 한다.

왜?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대한민국은 절대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 국민은 세금을 뜯어갈 때만 필요한 포탈의 대상이지 희생을 치러 구해야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정부측 답변도 미리 해주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들을 필요도 없다. 목소리만 다르게 나오는 녹음기이다. 항상 최선을 다했고, 항상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항상 똑 같은 일이 발생한다. 대통령도 바뀌고, 정권도 바꼈다. 그러나 똑 같다. 김선일씨가 피납되 사선을 넘나들고 있는 그때도 우리의 국개의원은 국회 원구성을 놓고 여전히 쌈박질을 하고 있었다. 이게 최선을 다한 우리 정부의 모습이다.

국가가 국가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 '국민 봉기'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이제 국민봉기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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