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가수 황현을 기억하며...
이름이 많이 알려지진 않았던 노동가수 황현.
황현이라는 이름을 우리가 많이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엔, 그녀가 자신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전주에서 태어난 황현은 숙명여대 노래패 한가람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서울지역 대학노래패 협의회(서대노협)에서 활동하다가... 1992년 대통령선거 민중후보 백기완 선거운동본부(백선본) 문선대 활동했고, 1994년 환경에 대해 노래하는 초록지대 활동을 하다 1994년 결혼과 출산으로 활동을 중단했었다.
그리고, 2012년 다름아름으로 활동을 재개하고, 2013년 결성된 일과노래 활동을 지속하다가 2018년 희귀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도 간결하게 정리되어버린 약력인 이유는, 그는 늘 소수자들의 곁에 서 있었기 때문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그의 주요 활동무대는 장애인, 비정규직들의 곁에서 함께 해왔고, 소위 장기투쟁사업장에는 늘 그가 함께 했다.
'다름이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뜻을 가진 "다름아름" 활동을 통해 소외된 이들의 곁을 지켰던 그는 2021년 10월 2일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지난 10월 1일 비정규직 노동자 쉼터 '꿀잠'에서 그를 기억하는 모임이 열렸고, 그 기록이 여기에 있다.
노동가수 황현은 본인의 이름보다 민중가요 작곡가 김호철의 부인으로 많이 기억되었다. 당시 백선본 문선대에서 활동했던 어떤 이에 의하면 1992년 백선본 문선대를 이끌고 있던 김호철은 백선본 문선대에서 활동하던 서대노협의 황현에게 첫 눈에 반했다고 한다. 어떤 이에겐 그렇게 고집스럽던 김호철 선생님이 그에게만은 다정다감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황현의 음악인생에 김호철은 평생 함께하는 삶이었다.
황현의 이력 가운데, 특이한 것은 강변가요제에 출전했던 것.
당시만 해도 대학에서 노래패 활동을 하다가 강변가요제나 대학가요제를 통해 대중가수로 성공하려던 사람들이 많았었기에 황현의 강변가요제 출전 이력도 마찬가지로 오해할 수도 있겠으나... 가사를 보며 짐작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노래는 사회주의에 대한 노래라고 한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붕괴가 사회주의운동 실패로 받아들여졌던 당시, 많은 사람들은 그 절망감에 운동을 떠났다. 신영복 선생님을 존경한다는 이유로 김일성주의자라는 소릴 국회에서 떠들었던 김문수도 그때 떠났던 시절이다.
김문수가 누구인가? 노동운동을 하면서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했다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받고, 또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서노련)을 결성해 심상정 국회의원과 함께 노동운동을 주도하고, 1986년 인천5.3항쟁을 주도해 또다시 감옥을 갔던, 그야말로 당시 노동운동계의 거목이었다.
그런 거목조차 "혁명의 시대는 갔다"며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 거목은 주변의 동지들에게는 '호랑이를 잡을 호랑이굴로 간다'고 말했다고 했다지만...
그런 시절에, 사회주의를 의미하는 노래-모르고 보면 전혀 알 수 없을 것 같지만-를 들고 강변가요제에 출전해서, 덜컥 본선 진출까지... 인터넷을 다 뒤져도 당시 영상은 구할 수가 없었다. MBC에 연락해 영상 구입이라도 해야하나 보다.
그림같은 사랑(1993)
글.곡 김호철/노래 황현
오늘밤 이렇게 아무런 기억조차 할 수 없는
나의 가슴속에 서러운 눈물이 앞을 가리우고 있는데
너는 그림처럼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는지
모른척 하지마, 어차피 나의 마음 모두 너의 작은 가슴속에 스미어
더 이상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는걸 너는 알잖아
그림 같은 사랑
사랑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나라 한 밤의 꿈속에 저 하늘 저편에
나의 수줍은 비밀의 나라 사랑 더 이상 그릴 수도 없는 나라
보랏빛 세상에 초록빛 노을에 그림 같은 사랑
강변가요제 본선 진출에 그친 황현은 다시 1994년 초록지대를 결성하고 환경노래를 불렀다. 초록지대는 황현, 박은영, 박란희로 이루어진 여성트리오였다. 우리는 최근에야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며 환경운동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초록지대는 거의 30년전에 이미 이 문제를 고민하고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대로면 인류가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이 노래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로 인해 골치가 아픈 지금 나왔다고 해도 시의적절한 노래로 보인다.
핵 (1994)
글.곡 김호철/노래 초록지대
아 아 핵, 아아 핵..
아마 조상님의 실수로 만들어졌다고 생각을 하지
손 하나 까딱하면 버섯구름 솟아올라 온 세상은 싹 하 ~
하늘 높은 곳에 조물주가 울고 땅위에선 불타는 수 만년 일류의 역사
수 천만년 전에 사라진 저 티라노사우르스 공룡의 화석처럼 우리도
호모사피엔스 화석되어 먼훗날 이 땅위에 또 다른 인류가 산다면
땅속에 묻혀버린 인간들의 화석을 보며..
어쩌다가 인간들은 멸종했을까? 하늘에 별똥별이 떨어졌을까?
바닷물이 넘쳐났나 땅바닥이 갈라졌나
이렇게나 많고 많은 흑인 백인 황인종이
어쩌다가 한꺼번에 멸종했을까?
어쩌다가 한꺼번에 멸종했을까?
핵은 정말 훌륭한 에너지라고 누가 장담을 하고 있나
히로시마 나가사끼 드리마일 체르노빌 그 다음은 어디
내일의 태양도 아이의 웃음도 번개처럼 사라질
지구의 회색빛 운명 어쩌다 인류가 이 못난 핵이란걸 만들었나
세계에서 제일 땅이 넓다는 그 큰 러시아 조차도
동해바다 맑은 물속에 핵 쓰레기 몰래 버리는
도대체 이세상은 어디까지 흘러가는지..
핵 쓰레기 동해바다 떨어지더니
용왕님도 방사능에 오염되셨어
에너지가 모자라면 아껴쓰고 나눠쓰지
이 무서운 핵에너지 꼭 써야만해?
핵발전소 원자폭탄 한 방이면..아
핵은 정말 지구별엔 쓸모가 없어
결혼과 육아로 인한 휴식기를 지나, 또다른 민중가수였던 박은영과 다름아름을 결성하고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다름아름의 "천천히 즐겁게 함께"가 황현이 부른 노래들의 첫 번째 자리는 차지한 것은 이 노래가 황현의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름아름에서 함께 활동했던 박은영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황현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에 속했다. 투쟁현장에서 황현을 본 사람들은 ‘엄청나게’ 밝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거라고 했다. 황현 특유의 맑은 목소리는 다소 우울한 현장에 균열을 내고, 그 사이로 다시금 희망을 싹틔우는 존재였"다고 말했다.
천천히 즐겁게 함께 가다보면 언젠가 그림속 존재하던 그 나라가 오리라 믿었던 것은 아닐까?
천천히 즐겁게 함께 (2012)
글,곡,편:김호철 / 노래:다름아름
앞만 쳐다보고 너무 서둘러서 왔나봐
지쳐진 사람 혹시나 없는지 살펴보고
잠깐 쉬었다 가 또랑 냇가에 발 담그며
말없던 친구 함께 불러 얘기도 들어보자
천천히 즐겁게 함께 힘들고 지칠수록 그렇게
세상이 우리를 거세게 떠밀어도 우린 절대 밀려나지마
천천히 즐겁게 함께 마음이 급할수록 그렇게
새벽의 태양은 빨갛게 뜬다 천천히 즐겁게 함께
* 천천히 즐겁게 함께 힘들고 지칠수록 그렇게
세상이 우리를 거세게 떠밀어도 우린 절대 밀려나지마
천천히 즐겁게 함께 마음이 급할수록 그렇게
새벽의 태양은 빨갛게 뜬다 천천히 즐겁게 함께
현이누나는 나에게도 참 좋은 사람이었다. 효창동 한 귀퉁이에서 작은 안경원을 열고 있던 시절, 자주 놀러와 수다를 떨고 가기도 했고... 무엇보다 조금은 서먹했던 호철이형과의 사이가 좋아졌던 것이 현이누나 때문이었다. 나에게 호철이형은 굉장히 고집스럽고, 엄격한데다, 무섭기까지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가가기 어려웠는데, 현이누나 덕분에 호철이형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현이누나가 아픈 내내 찾아가 보질 못했던 미안함이 남아 있다. 항암중인 누나에게 혹시나 못된 병균이라도 옮길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