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께,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아버님과 김대중

불현듯 아버님이 생각난다. 암으로 9년간 투병하시다 돌아 가셨다. 돌아 가시기 직전 그렇게 고통스러워 하셨던 어버님 머리 맡에는 언제나 " 전집"이 놓여있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남을 속여 본적이 없었던 아버님. 그 아버님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었다. 을 전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불현듯 아버님이 생각난다. 암으로 9년간 투병하시다 돌아 가셨다. 돌아 가시기 직전 그렇게 고통스러워 하셨던 어버님 머리 맡에는 언제나 전집이 놓여있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남을 속여 본적이 없었던 아버님. 그 아버님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었다. 을 전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당시 나는 을 지지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노태우, 김영삼, 으로 치뤄진 대선 패패의 이유를 에게 찾았기 때문이다. 노태우, 전두환의 계략에 빠져 분열, 결국 정권을 독재세력에게 넘겼다고 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을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 선생님'이 아니라 '대중이'였다.

꽤 오래 전에 순천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당시 나는 모 학교에 근무하는 교수님들을 만나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지긋이 드신 분들이었다. 에 대한 이야기 중 무의식적으로 또 '대중이가'라고 말했다. 앞에 앉아 계셨던 노 교수님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면서 우리 선생님이라며 받았다. 전라도 사람에 은 단순한 이 아니었다.

은 자신의 삶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이정표였으며, 우리나라의 미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이었다. 그렇기에 끝없는 신뢰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15대 으로 당선됐을 때 한

김대중 대통령의 장례는 국장으로 결정됐다고 한다. 또 우리나라의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국장이지만 6일장으로 치뤄진다고 한다. 아울러 사람이 모일 것을 두려워해 노제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꼭 국장과 노제를 바꾼듯한 기분이다. 올 2월에 우리나라 민주화에 한축을 담당하셨던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다. 또 5월에는 철학과 비전, 소신을 가지셨던 노무현 대통령께서 돌아 가셨다. 그리고 올 8월 우리나라 민주화의 초석이셨던 마저 돌아가셨다.

그 동안 김대중 대통령이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쓰셨다는 일기는 40쪽 분량의 소책자로 만들어져 국회 분양소를 찾는 사람에게 21일 부터 제공될 것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의 서거는 의 서거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반쪽이 무너졌다 의 말씀이나 언제나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분이 '아이처럼 통곡'하는 모습에서 그 상심이 얼마나 컷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을 떠나 보내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다. 그분의 서거가 안타깝고 서글프다면 그분이 하신 말씀 부터 지키자는 것이다.

행동하는 양심
이 것이 고인의 뜻을 기리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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