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독교인들을 욕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다운 개신교도
블로그에 개신교에 대한 비판 글이 많다. 이런 글들은 '기독교' 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기독교 중에서 개신교, 개신교 중에서 장로교, 장로교 중에서도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교회를 '(주) 예수의 점포'로 운영하는 목사, 이런 목사를 신처럼 따르는 신도들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모든 개신교가 교회를 '(주) 예수의 점포'로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많지는 않지만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 글은 이런 종파와 교인에 대한 글이다.
나는 기독교가 싫다!
시대정신에서 인용한 '조지 칼린 쇼'의 일부분이다. 2000년전에 쓰여진 소설과 그 소설을 믿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 중 이처럼 통렬한 비판은 없는 것 같다.
요즘 올라오는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글 중 비이성적인 글들이 많다. 이런 글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가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 기독교의 폐해를 사람들이 얼마나 절감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기독교가 싫다는 글은 정말 쓰기 어려운 글이었다. 이 글은 우리 나라 사람의 4분의 1을 적으로 돌릴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라온 답글은 예상외였다. 대부분 내 글에 공감을 하고 있었다. 이 것은 우리 교회의 잘못된 모습은 비기독교도 뿐만 아니라 기독교도들 조차 느끼고 있다는 얘기였다.
아무튼 얘기가 잠시 옆길로 샌 것 같다. 이 글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나는 기독교가 싫다는 글에 오해를 풀기위한 글이기도 하고 또 기독교가 좋다는 글을 써달라는 댓글의 답글이기도 하다. 아울러 많은 사람들하고 있는 오해. 좋은 교회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를 욕한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 쓴 글이기도 하다.
내가 만난 개신교도
내가 살고 있는 집 뒤에는 동서울 침례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친구(초등학교 동창)의 아버님이 세우신 교회다. 친구 아버님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고, 친구는 10여년 전에 에어로 스피커(Aero System)를 개발해서 떼부자가 됐다.
오늘 얘기할 교회는 바로 '동서울 침례교회'이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휘경 여고 앞에 지금 자리로 이사왔기 때문에 이미 세워진지 20여년이 훌쩍 지난 교회지만 지금도 세워질 당시와 똑 같은 규모의 교회이다. 이 교회보다 몇년 뒤에 세원진 천막 교회(장로교)가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로 자란 것과 비견된다.
부모님도 카톨릭 신자이고 여동생도 카톨릭 신자이다. 그러나 조카들을 성당이 아니라 동서울 교회에 보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침례교는 장로교처럼 편협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부모의 종교는 아이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헌금도 필요없다. 오로지 아이들만 있으면 된다. 느낌상 일요일에 보내는 유치원같은 느낌이다.
우영이도 장안동을 방문하면 가끔 이 교회에 간다. 기독교를 그토록 싫어하는 나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이 교회는 보낸다. 가끔 우영이를 데리러 교회에 가면 교회에 계신분들이 반갑게 맞이 하신다. 우영이와 내 얼굴이 닮아서 인지 몰라도 대번에 "우영이 아버님이죠"라고 한다. 그러나 이 것이 이 교회에서 듣는 전부이다. 장로교회였다면 "교회 안다니시죠?", "우영이와 함께 나오시죠?"등 온 갖 듣기 싫은 소리를 쏟아 낼텐데... 이 게 전부다.
그래서 침례교회는 사람이 사는 곳 같은 느낌을 받곤한다. 많지는 않지만 동네 아이들을 모아 두고 교리도 가르치고, 놀이도 한다. 이런 부분은 아마 다른 교회와 비슷할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규모이다. 작은 교회이지만 이 작은 교회는 대형 교회를 닮아가려 하지 않는다. 시골 한 귀퉁에 있던, 부활절에는 계란을, 크리스마스 때는 선물을 주던 정다운 시골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요즘 교회치고는 너무 허름하다. 그래서 이 교회가 좋다.
침례교도
내가 아는 기독교인 중 개인적으로도 친하며, 또 형으로서 좋아하며, 존경하는 형이 있다. 이 형한테 항상 반 농담조로 하는 얘기가 있다.
도아: 만약 모든 기독교인이 형같다면 오늘 부터 교회에 다닐텐데
형: 야. 나같은 사이비보다 좋은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형이 다니는 교회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사무실이 영등포에 있을 때였다. 영등포에 잠시 들렸던 형한테 연락이 왔다.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공원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형: 야. 여기가 내가 다니던 교회다. 영등포 침례교회.
침례교는 교회를 바꾸어도 되는지 아니면 너무 멀어서 바꿀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때 이 형이 '장로교도가 아니라 침례교도였다'는 것을 알았다. 이 형이 교인이라는 것은 거의 티 나지 않는다. 교회가 아닌 사회에서 교회 얘기는 안하기 때문이다. 밥을 먹을 때 간단히 기도하는 모습만 아니라면 교인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
언제 부터인가 이 형과의 모임은 주말에는 하지 못하고 항상 주중에만 하게됐다. 그 이유는 이 형이 주말학교 교사가된 뒤였던 것 같다. 당시 인천으로 이사가서 집들이를 하게됐는데 집으로 와야하기 때문에 토요일에 집들이를 했다. 안산에 살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형은 차를 끌고 아이와 함께 우리 집을 방문했다.
형: 야. 주말에는 이런거 하지말라니까.
도아: 왜?
형: 주말에는 술 못마셔.도아: 그래. 그런데 애들도 데리고 왔네.
형: 응. 아이들이 있으면 술을 안마실까해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자신과 한 약속인 것 같갔다. 그리고 그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이까지 동원해서 술을 자제한 것 같았다.
이 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을 배려할 줄 안다'. 여기서 남은 교인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타인이다. 종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일반적으로 교인은 교회에 대한 역할은 잘해도 사회에 대한 역할은 등한시 하는 때가 많다. 그러나 이 형은 교회의 일은 교회 내에서 끝내며 사회의 일은 사회에서 마무리한다. 그래서 이 형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친구로서도 이 형만한 친구가 없고, 선배로서도 이 형만한 선배가 없다.
동기 모임 보다는 이 형들 모임에 깍뚜기로 더 자주 나가는 편이다. 워낙 친하기 때문이다. 이 모임에 나오는 형들 중 한명이 IMF 여파로 직장을 잃고 카드채가 많아서 자살을 하려고 한적이 있다. 이 일 때문에 다시 모였고 이때 이 형이 한마디 했다.
형: 야, 매달 10만원씩만 보내.
약 일년 정도 형들이 10만원씩을 보내 주었고 결국 이 형도 친구들이 보내준 돈과 다른 직장을 구해 재기했다. 물론 큰돈은 아니다. 그러나 친구를 위해 매달 10만원씩 낼만한 친구를 주변에서 한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이 형을 좋아하는 이유. 여러 가지가 있지만 종교적인 편협합이 없다는 점이다. 상대의 종교가 무엇이든 상대를 존중해주면서 자신의 종교를 지켜나간다. 진정한 교인이라면 이래야 하지 않을까?
장로교도
가장 흔하게 접하는 교인은 장로교도다. 그러나 목사를 포함해서 올바른 사고를 가진 장로교도는 거의 보지 못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석가는 귀신'을 외치는 수많은 장로교도를 보았지만 타인(교인이 아니라)과 잘 어울리는 장로교도는 많이 보지 못했다. 나는 기독교가 싫다는 글에서 얘기한 것처럼 우리 교회의 썩은 모습들 때문에 좋은 모습을 본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웠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상당히 까칠하지만 다른 장로교도와는 다른 교인을 만난적이 있다. 처 할머니 장례식 때였다. 처 할머니의 장례식은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치루었다. 우리 장례 문화에 비해 다소 이질적이지만 장례식장에는 빈소만 있었다. 따라서 조문을 한 뒤 식권을 받아 위층에서 식사를 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주변 식당으로 가는 사람이 많았다.
처가집은 딸만 셋이고 따라서 빈소를 지키는 것은 내가 하게됐다.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술상이 있는 곳이 더 좋지만 빈소만 있기 때문에 연세대 주변의 편의점을 뒤져 맥주를 마시면서 빈소를 지켰다. 장지는 처가집 선산이 있는 청주로 정해졌고 하관은 10시로 잡혔다. 서울에서 청주까지는 2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늦게 가는 것보다는 빨리 가는 것이 낫기 때문에 오전 6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오전 6시에 교회분들이 오셨다. 그 중 집사라는 분이 오셨다.
집사: 아. 식사는 어떻게해요?
도아: 일단 출발하고 휴게소에서 먹을까하는데요
집사: (화를 버럭내며) 아니 아침도 않먹고 어떻게 출발해요?
결국 장인 어른과 상의해서 남은 식권을 드렸다. 식권을 받아든 집사가 인솔자인 듯 집사가 위층으로 올라가자 나머지 교인들이 따라갔다. 그러다 나이가 조금 드신분을 만났다.
장로: 자네들 어디가나?
집사: 식사하러 가는데요.
장로: 아니 이 사람들이 미쳤나. 그러다 하관이 늦어지면 책임질거야.
집사: (머리를 긁적인다)
나는 장로교도중 집사 같은 사람은 정말 많이 봤다. 장례를 도우러 온 사람이라면 가장 중요한 것이 하관이고 이 하관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다른 것은 포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이렇게 산다. 그런데 장로교도는 이런 일반적인 것 보다는 목전의 자기 이익만 구하는 걸 많이 봐왔다. 반면에 장로의 행동은 일반인(교인이 아닌)으로서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반인으로서 당연한 행동을 하는 장로가 무척 특이했다. 아울러 이 장로의 까칠한 행동을 보니 장례를 집전한 목사가 생각났다.
처음 목사를 봤을 때 눈이 조금 이상했다.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이 교회 목사의 눈은 가짜 눈이었다. 또 얼굴의 뺨 부분의 색깔이 다른 부분과 확연히 달랐다. 자세한 것을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화상으로 눈과 얼굴의 일부를 잃고 다른 부위의 살을 이식한 듯했다. 또 목사 치고는 말하는 것이 조금 어눌했다. 다른 장로교회의 화려한 언변을 구사는 목사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때 든생각이
"어. 교회도 장사인데 왜 저런 사람을 목사로 삼았을까"
였다. 그런데 까칠한 장로를 보니 나름대로 이해가 됐다. 교회의 목적은 신앙이고 신앙이 목적이라면 화려한 말솜씨로 사람 등치는 목사보다는 자신의 어려움을 간증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목사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구행렬은 고속도로에 들어섰고 시간은 오전 7시 정도가 됐다. 차의 흐름이나 교통 방송을 들어보면 막히는 곳이 없는 것 같아 휴게소에 들려서 일단 아침을 먹고 다시 장지를 향했다.
하관도 무사히 마쳤다. 하관식에는 서울에 올라오지 못한 처가집 일가친척이 와 있었고 하관 뒤에도 떼를 입혀야 했기 때문에 하관을 끝내고 바로 서울로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하관식에 참석한 교인들은 함께 타고 온 관광 버스가 아니라 고속버스를 타고갈 수 밝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집사.
이번에는 서울까지 태워다 달라고 때를 쓰는 것이었다. 일가 친적 중 한사람의 차를 빌려 서울까지 데려다 줘야 예의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결국 다시 장로님께 사정을 얘기했다.
장로: 자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장로: 장례를 방해하러 온거야 도와주러 온거야?
집사: (...)
결국 장로님과 교인들을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태워드리고 표를 끊어 고속버스를 타고 가시는 것을 보고 다시 하관식장으로 갔다.
남은 이야기
여기서 설명한 장로는 교인이라기 보다는 일반적인 상식인에 불과하다. 아울러 저런 집사 역시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의외로 교회에 직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중 비상식적인 사람들을 많이 봤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에 불과한 장로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이런 상식인 조차 만나본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다들 그런 얘기를 한다.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가보면 똑 같았다. 교화라는 울타리로 보면 괜찮은 사람, 정말 많다. 그러나 그 울타리를 벗어 버리면 정말 비상식적인 사람도 많다. 특히 장사를 해보면 교인과 비교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도아: 고생 많으셨습니다. 편한게 가시기 바랍니다.
목사: 아. 젊은 사람이 무슨 접대를 이렇게 잘해요.
처가집에 아들이 없고 또 내가 큰 사위라 내가 손님 접대를 했다. 비상식적인 집사가 있고 교인들을 싫어하지만 접대는 정성을 다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종교가 무엇이든, 그 사람이 밉던 좋던 내 할머니를 위해 오신 손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교인들도 이해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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