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문화유적의 도시
이전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충주는 문화 유적이 많은 곳이다. 삼국 시대 때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중요시 됐고, 후에는 교통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원 고구려비를 비롯한 유적이 곳곳에 있다. 일제 시대 친일파들이 일본 관리를 추앙하기 위해 세운 송덕비도 있었지만 발견 즉시 친일파 후손이 송덕비를 파가 버린 덕분에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이 잘려 나간 아픔도 있다.
충주, 문화유적의 도시
이전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충주는 문화 유적이 많은 곳이다. 삼국 시대 때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중요시 됐고, 후에는 교통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원 고구려비를 비롯한 유적이 곳곳에 있다. 일제 시대 친일파들이 일본 관리를 추앙하기 위해 세운 송덕비도 있었지만 발견 즉시 친일파 후손이 송덕비를 파가 버린 덕분에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이 잘려 나간 아픔도 있다.
충주로 내려온 뒤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아이들과 함께하는 주말 여행이다. 어디를 갈지 고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가본 곳은 대부분 아이들이 좋아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는 충주에서 아주 가까운 탄금대로 잡았다. 일단 탄금대를 가는 방법을 파란의 미친 지도로 찾았다. 연수동을 출발해 충주역을 지나 나오는 달천 사거리에서 우회전하고 다시 국제 종합기계 앞에서 우회전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탄금대
그러나 역시 동네 지리는 동네 사람에게 물어 보는 것이 가장 빨랐다. 연수동을 출발, 롯데 마트를 지난 뒤 나타나는 사거리에서 우회전하고 한 1K 정도 가자 탄금대 공원이 나타났다. 충주호 주변 공원도 마찬가지지만 탄금대 공원도 충주라는 도시의 규모에 비해 공원 조성이 잘되어 있었다. 아이들과 즐길 수 있는 인라인 스케이트 장도 있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도 있었다.
물이 아주 맑다. 바닥이 훤히 보인다.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곳이라 그런지 상당히 넓다. 아울러 오른쪽으로는 긴 아스팔트의 산책로가 있다. 사진을 찍을 때 날씨가 조금 흐려 사진은 약간 뿌옇다.
탄금대 공원에서 자전거 타는 곳을 지나면 탁트인 남한강이 보인다. 맑은 물과 시원한 바람, 한 여름, 자전거를 타고 돌면 무더위도 단숨에 달아날 것 같았다. 왼쪽으로는 상당히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탄금대이다.
우영이는 성격이 급하다. 첫째들이 보통 참을성이 없는 편인데 우영이도 비슷하다.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녀석에게 탄금대를 구경하고 와서 타자고 하자 시큰둥한 표정이다.
노래비
일단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노래비가 나온다. 항일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권태응 선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라고 한다. 적혀있는 시는 감자꽃인데 모르는 시였다. 이 노래비가 있는 곳부터가 모두 탄금대이다. 탄금대라는 이름은 가야국(내 조상님이 세운 나라)의 악성 우륵이 이 곳에서 가야금을 탄주하던 것에서 유래한다.
미관을 해치는 가건물
노래비를 지나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어느 관광지에나 있는 흉물스런 건물이 나온다. 명색이 관광지라고 하면서 왜 저런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지 모르겠다. 관광지의 미관을 해치고 광광객의 눈쌀을 찌프리게하는 것은 장사속으로 아무렇게나 지은 저런 건물이다. 나는 관광지의 건물만은 정부가 직접 관리하고 세를 받았으면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 방법이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고 장사하는 분은 적은 투자비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찾는 관광객도 즐겁게 관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을 뒤로 하고 지나가면 다시 조그만 계단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열두대이다. 열두대에 대한 설은 두 가지라고 한다. 하나는 임진왜란 때 배수진을 친 신립장군이 활을 많이 쏴서 활의 열기를 식히려고 열두번이나 이곳을 오르내려 붙여진 이름이라는 얘기가 있고 또 하나는 열두번의 싸움 끝에 승산이 없자 이 곳에서 투신 자살을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얘기가 있다.
열두대를 지나면 가장 높은 곳에 정자가 세워져 있다. 그러나 주변 나무들 때문에 가장 높은 곳의 정자이지만 막상 전망은 그리 좋지 못하다. 이 정자를 지나면 또 가파른 계단이 나타난다.
계단을 내려오다보면 작은 비석이 나온다. 여기서 다예 사진을 찍었다. 엄마를 닮아서 인지 다예도 집에 있는 것보다는 밖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밖으로만 나오면 어떤 곳이든 즐겁다.
질문이 많고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우영이는 비석의 글을 열심히 읽고 있다. 주의가 산만하지만 우영이 나이를 생객하면 아는 것이 상당히 많다. 그 이유는 관심있는 것에 대한 집중력이 좋기 때문인 것 같다.
순절비
다시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다 보니 왼쪽으로 고가가 보인다. 무슨 집일까 궁금해서 들여다 보니 신립 장군 순절비였다. 관광지 관리는 하지 않는 듯 신립 장군 순절비 옆의 안내 표지는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신립 장군 순절비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다시 왼쪽에 고가가 나온다. 확인해보니 산신각. 처음에는 이곳에 웬 산신각이있나 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산신각은 탄금대 안에 있는 대흥사의 일부였다.
대흥사 대웅전
계단 막바지에서 보트 타는 곳으로 내려왔다. 식당도 있지만 역시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 보기 흉한 시커먼 시멘트 집과 오랜만의 손님이 반가운 듯 주인 아주머니께서 나와 계셨다. 이 집들을 돌아 다시 조금 올라오니 돌연 대웅전이 보였다. 대웅전이 있다면 절이라는 얘기인데, 이런 곳에 절이 있을까 싶었다. 가까이 가서보니 대흥사라는 절이었다.
신라 진흥왕 때 용흥사가 있던 자리에 1956년에 오법우 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부여 부소산에 있는 고란사과 비견되는 사찰로 1968년에 대웅전이 화재로 소실된 이후 1969년에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방문해 보면 알 수 있지만 대흥사는 대웅전, 산신각, 부속건물 하나만 있는 아주 작은 사찰이었다.
석탑에 풍경이 달려 있어 바람이 불면 아주 운치있는 풍경소리가 들린다. 이런 풍경 소리가 봄날의 따뜻함과 산속의 한적함이 어우러져 한산하며 편안한 산사의 느낌을 만든다.
황토 자갈 지압장
대흥사 앞 길을 따라 올라오니 아까 보았던 흉물스런 건물이 다시 보였다. 이 건물을 지나 앞쪽으로 오다보니 재미있는 것이 있었다. 이른바 '황토 자갈 지압장'.
황토를 돌처럼 만들어 놓고 맨발로 밟아 지압을 하는 장소였다. 황토가 발에 뭍으면 씯을 수 있도록 수도도 옆에 있었다. 장난 삼아 들어가 보니 지압 효과가 대단했다. 한 2~3분 걸어 다닌 뒤 신발을 다시 신으니 발이 계속 후끈 거렸다. 후끈 거림이 가라 앉자 말없는 시원함이 몰려 들었다.
조형물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하지만 아이는 어쩔 수 없다. 말리는 내 말을 무시하고 이미 앉아 있는 우영이. 조형물 뒷 편으로 보이는 황토색 마름모 꼴이 황토 자갈 지압장이다.
충혼탑
오른쪽으로 돌아 조금 더 가다 보면 상당 높은 단 위에 세워진 충혼탑을 볼 수 있다. 충혼탑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탑에는 6.25 사변 때 국가를 위해 순국한 충주 지역의 군경들의 영령이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아울러 충혼탑이라는 글씨는 이승만씨의 친필이라고 한다.
이 충혼탑을 지나 계속 가다보면 탄금대 입구가 나온다. 아래쪽 주차장(탄금대 공원)에 차를 세우고 오면 좋을 텐데 꼭 여기까지 올라와서 차를 세운다. 입구에는 약도가 있는데 약도를 보면 궁도장, 문화원 등도 있었다. 그러나 관심이 없어서 탄금대 공원으로 가기위해 다시 노래비로 향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이 오던 길 옆으로 작은 오솔길이 있었다.
확인해 보니 사람들이 맨발로 걸어 갈 수 있도록 만든 오솔길이었다. 중간 중간 자갈을 깔기로 하고 황토 자갈도 깔아 두었다. 여름에 맨발로 다니면 좋을 것 같았지만 오랜 만에 맨발로 걷고 싶어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이 길을 따라 노래비로 향했다. 그런데 발이 장난 아니게 아팠다.
자건거 타은 우영
그리고 탄금대를 내려와 자전거를 빌려서 탓다. 그런데 자전거를 빌리는 비용이 생각보다 아주 쌌다. 아이들 자전거는 한시간에 1000원, 어른은 2000원이었다.
두발 자전거는 익숙하지 않아 출발도 못하던 녀석은 한 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자 이제는 제법 잘 탄다. 브리이크도 잘잡고. 그러나 아직은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피하질 못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보니 조금 특이한 자전거가 있었다. 세발 자전거. 핸들은 없고 안장 옆에 손잡이가 있다. 아이들의 세발 자전거처럼 앞 바퀴에 패달이 달려있었다. 어른용인 듯 주로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타고 있었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자전거 주인에게 물어 보고 나도 이 세발 자전거를 탓다.
트라이런이라고 한다. 일반 자전거 보다 운동이 많이 되고 타는 자세가 눕는 형태이기 때문에 누워서 타는 웰빙 자전거라고 홍보하고 있었다. 아울러 급회전이 가능하고 타보면 상당히 재미있다. 분해 조립이 간단하기 때문에 차에 싣고 다녀도 된다.
타는 방법은 간단했다. 안장 옆의 손잡이가 핸들이었다. 패달을 밟으면 앞으로 나가고 패달을 반대로 밟으면 브레이크가 걸린다. 그러나 막상 타보니 방향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방향을 바꾸기위해 굳이 안장 옆의 핸들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몸만 틀면 방향이 바뀌었다. 안장 옆의 핸들은 급커브를 돌 때만 필요했다.
사진이라도 한장 찍었으면 좋았겠지만 뱃살을 보여주기 싫어 찍지 않았다. 한시간 정도 자전거를 탄 뒤 다시 집으로 향했다. 날씨는 좋고 탄금대에서 보낸 시간이 한 세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중앙탑을 가보려고 했지만 문제는 지리를 모른다는 것.
결국 집으로 와서 술 한잔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남은 이야기
다예는 둘째라서 그런지 모든 것이 재미있다. 그래서 잘 웃는다. 그리고 엄마가 없어도 잘 논다. 작년에 방 도배를 하면서 다예를 밤 11시까지 동네 아주머니에게 맡겼다. 단 한번도 엄마를 찾지않았고, 집으로 데리고 오려고 하자 오히려 안간다고 떼쓰는 것이었다. 다예를 유치원에 보내면서 며칠이나 갈지 궁금했다. 그런데 잘 다닌다. 오히려 가지않아도 되는 토요일까지 유치원에 간다. 그래서 오늘도 유치원에 갔다. 다예의 유치원 선생님이 오늘 당직이라며, 어제 다예에게 한 말은
다예야. 내일도 유치원 올거지.
잘 웃고 잘 따라서 그런지 유치원 선생님들도 다예를 무척 좋아한다.
눈살을 찌프리게하는 운전자들이 있었다. 차가 들어올 수 없도록 정지선도 표시되어 있고, 군데 군데 가이드도 있지만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노는 곳에 꼭 차를 들이 밀고 들어온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조금이라도 걷지 않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