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망증이 심한편이다. 기억력이 좋다고 하면서 건망증이 심하다고 하면 어불성설 같지만 사실이다.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지금도 공부한다고 시립 도서관을 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때는 공부하러 도서관을 가는 경우가 흔했다. 당시에는 종로에 있는 정독 도서관을 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공부하러가다가 풍문여고 칠공주한테 걸려서 혼난 뒤로는 정독 도서관 보다는 동대문 도서관을 주로 다니게 되었다.
동대문 도서관에서의 일이다. 공부를 하러 갔으면 공부만 해야하는데 세상 일이라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다보니 공부보다는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때도 괜히 참고 자료실에 갔다가 우연히 꺼내든 일간 스포츠, 그리고 일간 스포츠에 연재하고 있는 김성종 추리 소설(제5열)을 읽은 것이 문제가 됐다.
처음에는 장난 삼아 읽기 시작한 것이 결국 연재 시작부터 끝까지 하루 종일 읽게되었다. 이렇게 공부는 하지 않고 말초신경이나 자극하는 소설(막상 중요한 내용은 대부분 누군가 찢어 갔다)을 읽다보니 눈도 핑핑 돌고 생리적 현상도 급해 화장실을 들렸다.
화장실에서 나와 참고 자료실로 올라가는 데 지나 가는 여학생들이 힐끗 힐끗 보면서 자기들끼리 수군덕 거리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수군덕 거리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차피 읽기 시작한 소설, 마저 읽기 위해 윗층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계단 중간에 걸려있는 커다란 거울을 보고 그 여학생들이 왜 수군 거렸는지 알게됐다.
당시 내가 잎었던 옷은 청바지였고, 상의는 겨울이라 분홍색 Y 셔츠에 어머님이 손뜨게 해주신 털 셔츠를 Y 셔츠 위에 잎고 있었는데, 청바지 자크 사이로 분홍색 Y 셔츠 자락이 마치 뭐처럼 삐져나온 것이었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자크를 잠그는 것을 잊고 나와 발생한 일이었다.
급하게 자크를 잠근 뒤 그 여학생들 노려보며 (기지배들,,, 봤으면 소감이라도 얘기해 주지).
이런 일들이 꽤 자주 발생한다. 어렸을 때야 그렇다고 쳐도 나이를 먹은 요즘도 이런 일이 발생하면 (이거 치매아냐)하는 생각이 들곤한다. 그러면 치매와 건망증을 구분하는 방법은 뭘까? 아주 쉽다. 길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났다.
건망증: 어, 제 어디서 봤지?
치매: 어. 제 누구지?
그외에도 많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여기까지이다. 더 좋은 구분법이 있다면 알려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