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꿈은 누구나 꾼다. 그리고 매일 꾼다. 그런데 꿈을 꾼 날과 꾸지 않은 날이 있는 건 깰 때 꿈을 기억하느냐 기억지 못하느냐에 달렸다고 한다. 사람들이 악몽을 잘 기억하는 이유는 악몽을 꾸다 놀라서 깨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150년전 '꿈의 해석'을 쓴 뒤 이제 꿈은 상상의 영역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꿈에 따라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달라진다.
꿈
오랜만에 헤어진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그동안 쌓인 얘기를 나누며 운하 옆길을 걷고있었다. 일상적인 풍경, 그리고 이국적인 풍경때문에 꼭 외국에 나와있는 느낌이었다. 과연 여기가 한국인가 싶을 정도로 큰 대운하에는 여느 풍경처럼 여객을 가득 태운 여객선이 질주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운하를 질주하던 여객선이 갑자기 방파제로 튀어 올라 방파제 난간을 들이받고 추락했다. 친구와 함께 방파제를 걷고있던 나는 친구와 함께 방파제로 떨어졌다. 3층 높이의 방파제에서 떨어졌지만 다행히 나도 친구도 큰 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방파제를 들이받은 여객선을 타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에 찬 외침에 고요하던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됐다.
친구와 나는 부상당한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했고, 조금 후 119 구조대도 도착했다. "여객선 사고치고는 인사 사고가 가장 작은 사고였다"고 한다. 처음 구조에 나섰던 친구와 나는 그 덕에 유명인사가 됐다. 지역 유지도 만나고 이 지역 국회의원도 만나 대접을 받았다. 친구와 나는 친구의 대학교 동창이 근무하고 있는 등대에 방문했다.
상당히 이국적인 이 등대 거주자는 친구 대학 동창뿐이라고 한다. 친구와 나는 함께 술을 마시고 다음날 상경했다. 서울로 향하던 친구는 갑자기 청주에 일이 있다며 청주로 떠나갔고, 나혼자 인천 터미널에 도착했다. 인천 터미널의 분위기는 예전에 알고 있던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사람들도 거의없었다. 옆을 지나던 장성이 전쟁이 발발했으므로 움직이는 모든 것을 사살하라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전쟁? 어디와 전쟁이 발생했다는 거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나는 터미널에서 무슨 일인가 싶어 밖으로 뛰어나갔다. 터미널 곳곳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흠칫 놀란 나는 반대쪽으로 뛰어 갔지만 반대 쪽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나를 겨냥하고 있지만 나에게 총을 쏘지는 않는 것이었다. 바로 옆으로 다가가 어깨를 쳐도 미동도 없이 보던 방향만 주시하는 것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유령이라는 것을...
예전에 꾼 꿈입니다(글의 작성일이 2005년 1월 23일이더군요). 마치 식스 센스의 주인공이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