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역시 들은지 하도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 가물합니다. 출전이 어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중학교 한문 시간에 들었던 얘기를 기억을 되살려 재구성한 것입니다.
왕위찬탈을 모의하고 있던 수양 대군이 하루는 시정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글자판(한자를 모아놓은 판)으로 점을 치는 점쟁이를 만났습니다. 수양 대군이 아무 생각없이 밭 전(田)자를 고르자 점장이가
허허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지만 왕이 많은 이 나라는 어디로 갈꼬?
라고 했다고 합니다. 흠칫 놀란 수양 대군이 무슨 얘기인지를 물어본 즉, 밭 전자는 임금 왕(王)자 두개를 수평/수직으로 겹쳐놓은 글자라는 것입니다. 얼마 후 수양 대군은 다시 점장이를 찾아 똑 같이 밭전자를 골랐다고 합니다. 그러자 점장이가
허허 첩첩산중이로고
하더랍니다. 다시 의아해진 수양 대군이 점장이에게 그 진위를 물어보니 밭 전자는 뫼산(山)를 사방으로 둘러놓은 것과 같은 글자이므로 첩첩산중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점장이가 무었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 수양 대군은 바른 말을 하지 않으면 죽여버릴 요량으로 허리에 칼을 차고 다시 점장이를 찾아가 칼 끝으로 다시 밭전(田)자를 골랐다고 합니다.
죽음을 느낀 점장이는 말없이 밭전자의 좌우를 치더랍니다(밭 전(田)자에서 좌우를 없애면 임금왕(王)자가 됩니다). 이에 크게 깨달은 수양 대군은 좌의정 김종서와 우의정 황보인을 치고 왕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세간에 전하는 야담입니다. 역사가 아니므로 내용 중 역사적인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담은 역사는 아닐지언정 당시의 세태를 상당히 자세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의 야담에는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시간이 되면 이런 얘기를 한토막씩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