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이야기 56 - 정통일식 본(本)

2008/06/13 15:45

충주 삼다(三多)

제주에는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돌, 바람, 여자를 제주 삼다(제주 말로는 돌, 보름, 비라)라고 한다. 그런데 충주에도 많은 게 세가지가 있다. 주유소, 학원, 식당이다. 주유소가 많은 건 땅이 넓어 땅 값이 싸고 유휴지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확원이 많은 건 충주가 상당 기간 비평준화 지역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식당이 많은 이유는 잘 알지 못하지만 70년대 주택구조(1층 상가, 2층 가정집)가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충주 삼다 중 하나로 식당을 꼽지만 정작 맛집은 많지 않다. 충주는 맛집이라고 해도 망하는 집이 많다. 아울러 비싸면 거의 대부분 망한다. 이 글에서 소개한 '정통일식 본(本)'은 전국적으로 생각해도 맛집 상위 3에 드는 집이다. 정식이 3, 5, 9만원이기 때문에 충주 물가를 고려하면 정말 비싸다. 그러나 나오는 음식 하나 하나 정성이 들어있고 맛 또한 아주 좋다. 충주에서는 아무리 맛집이라고 해도 인맥이 없으면 대부분 망한다. 여기에 가격까지 비쌋기 때문에 정통일식 본(本)도 몇 개월만에 사라졌다.

우엉맘의 시험

지난 화요일에는 청주에 다녀왔다. 우엉맘한식 조리사 시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충주에서 청주까지의 거리는 80Km가 못 되지만 가는 시간은 한시간 반이 넘게 걸린다. 거리상 거의 배인 서울과 가는 시간이 비슷하다. 남북을 달리는 도로는 많아도 동서를 달리는 도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충주에서 청주로 가려면 3번 국도를 타고 주덕오거리에서 청주로 가는 36번 국도를 타면 된다. 따라서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모두 국도이고 청주도 도시의 규모가 커져서 시내에서 막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조금 넉넉하게 잡고 출발했다. 12시 10분에 출발해서 시험장에 도착한 시간은 2시 정도 됐다. 대성 중학교 뒤라고 해서 대성중학교를 찾은 뒤 시험장을 찾아 다니느라 조금 늦었다.

우엉맘은 시험을 보러 가고 나는 밥을 먹고 요즘 항상 들고 다니는 로 인터넷을 즐겼다. 무선 인터넷은 역시 myLGNet을 이용했다. 2시 40분까지 입실이지만 세시에 시험을 시작, 네시에 끝이 난다고 한다. 3시 30분을 조금 지나 시험장으로 가다 보니 우엉맘에게 전화가 왔다.

내용인 즉 시험이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시험을 보고 나오는 우엉맘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책한권 읽지 않다가 조리사 자격증 때문에 기출 문제집을 봤지만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일단 시험이 어렵다고 한다. 차를 타고 오면서 틀린 문제를 기억하고 답이 무엇인지 물어 보곤한다.

그러나 나는 이때 합격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보통 시험을 친 뒤 잘봤다고 느끼는 때는 둘중 하나이다. 정말 잘봤을 때와 정말 시험지만 잘봤을 때이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시험을 보고난 뒤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 쉽다고 느끼는 사람보다 점수가 좋은 때가 많다.

그 이유는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틀렸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은 모든 것이 어려울 수 있고 모든 것이 쉬울 수도 있다. 그런데 틀린 문제를 기억하는 것으로 봐서 60점 이상은 충분히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정통일식 본(本)

사무실에 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있는데 다시 연락이 왔다. 합격했다는 것이다. 대단한 시험은 아니지만 한식 조리사 자격증도 국가고시 중 하나이므로 축하하는 의미에서 저녁을 사주기로 했다. 우엉맘은 아파트로 가는 골목에 생긴 일식집에서 정식을 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일식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회를 먹으면 되기 때문에 일식집에서 정식을 먹기로 했다.

정통일식 본(本)

얼마 전에 새로 생긴집이다. 외관은 상당히 깔끔하다. 아울러 일식집이라는 티가 팍 난다.

우엉맘과 아이들과 함께 새로 생긴 정통일식 본(本)을 방문했다. 생긴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비싼 일식집답게 실내장식은 아주 깔끔했다.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보니 정식의 가격은 2만원, 3만원이었다. 한끼 식사로 3만원을 주기는 아깝고 해서 2만원짜리 정식을 시켰다.

그런데 정식은 점심때만 된다고 한다. 저녁때는 코스요리만 된다고 한다. 코스 요리의 가격은 3만원, 5만원, 7만원, 9만원이었다. 정식한끼를 생각하고 왔는데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래서 3만원짜리 코스 요리를 시켰다. 그러자 다시 3만원짜리는 회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3만원씩이나 하면서 회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기분이 조금 좋지 않았다.

그냥 나올까 싶기도 했지만 일식을 먹고 싶어하는 우엉맘 때문에 큰 마음을 먹고 5만원짜리 코스 요리를 시켰다. 잠시 뒤 여러 가지 음식이 나왔다. 그러나 처음 접대한 아가씨의 모습에서 장사속을 봤기 때문에 기분이 조금 않좋았다. 그래서 대충 대충 먹어봤다. 그런데 '돈 값을 한다'. 다 맛있다. 허다 못해 두부도 맛있다.

일식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입에 꼭 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일식집과는 가격 만큼이나 달랐다. 그리고 나온 본 요리. 우럭, 광어, 농어, 도미, 참치, 전복으로 꾸민 모듬 회였다. 그런데 장식이 너무 예뻣다. 장식보다 더 놀란 것은 바로 '살아 있는 우럭'이었다. 예전에 노량진 수산시장 2층의 부산횟집에서 이렇게 살아있는 물고기를 장식으로 사용한 회를 맛본 뒤 처음이었다.

회가 조금 두껍기는 했지만 그 싱싱함 때문인지 하나 같이 맛이 좋았다. 특히 참치는 여지껏 먹어본 참치 중 가장 맛있었다. 원래 참치는 부위마다 맛과 가격이 다르다. 그러나 참치 회 전문점에서 먹어도 이런 맛은 나지 않았다.

본요리 회

가격과 서빙하는 아가씨의 장사속 때문에 처음에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두번째로 서빙한 아가씨의 친절함과 이 화려한 본요리 때문에 기분이 완전히 풀렸다. 우럭, 광어, 농어, 전복, 도미(반시계 방향)가 놓여있다. 가운데 돼지 고기처럼 보이는 것이 참치이다. 참치에는 금가루를 뿌려 두었다. 먹다가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양이 조금 작아 보인다.

살아 있는 우럭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노량진 수산시장 2층에는 부산횟집이 있다. 다른 횟집과는 달리 호객행위를 전혀 하지 않지만 손님으로 차고 넘친다. 이 집에서 회를 시키면 바닥에 광어를 깔고 이 위에 회를 놓아 내온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광어가 눈을 깜박인다. 이런 회는 부산횟집외에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었다. 우엉맘과 사귀던 12년 전에도 둘이 같이 회를 먹으면 7만원이 넘게 나왔었다.

그런데 오늘 살아 있는 물고기를 장식으로 사용한 회가 나왔다. 아가미를 활짝 열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저렇게 움직인다. 회를 먹기 시작할 때는 움직임이 상당히 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런 움직임은 둔해졌다.

싱싱한 전복

싱싱한 전복 하나를 회로 쳤다. 전복을 사본 사람을 알겠지만 죽은 전복은 싸지만 회로 먹을 수 있는 살아있는 전복은 상당히 비싸다. 예전에 인천에서 전복을 살 때도 이보다 작은 전복 세개를 2만원에 구입했던 것 같다. 싱싱한 전복은 씹으면 오도록 씹히며, 뒷맛이 아주 시원하다.

회는 역시 광어

나는 광어 보다는 도다리를 더 좋아한다. 광어에 비해 도다리가 훨씬 더 고소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도다리로 회를 배웠기 때문인 것 같다. 싱싱하기 때문인지 회에 광택이 있었다. 맛은 좋았지만 조금 두껍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닥 좋아하지 않는 농어

농어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농어는 광어보다 얇게 썰어져 있었다. 고기에 따라 써는 두께가 다른 듯했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다른 곳에서 먹던 농어 보다는 맛있었다.

정말 맛있는 참치

나는 참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맛있는 참치를 먹어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동원에서 운영한 참치 전문점도 가봤고 다른 참치 전문점에 가서 여러 부위를 먹어봤지만 참치가 맛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다. 그런데 이 참치는 아주 맛있었다. 아주 고소하며 깊은 맛이 김맛과 어우러져 입안에서 녹는다.

살아있는 우동

일식 우동에 가시오부시를 올려 두었다. 그런데 열기 때문에 가시오부시가 살아 있는 듯 움직인다. 처음에는 무슨 살아 있는 요리가 나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가시오부시를 들어내자 우동이 나왔다. 이 우동은 우영이와 다예에게 아주 인기였다.

서비스 초밥

아이들이 회를 먹지 못하기 때문에 회초밥과 유부초밥이 서비스로 나왔다. 유부초밥은 우영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또 회를 먹지 못하기 때문에 회초밥은 삶은 새우를 얹어 나왔다. 물론 아이들 음식이라 고추냉이는 포함되지 않았다.

바싹 바싹 고소한 튀김

일식을 잘하는 집은 튀김에서도 차이가 난다. 어떻게 튀겼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도 바싹 바싹한 고소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것은 그렇다고 쳐도 깻잎을 튀긴 튀김은 보통 시간이 지나면 눅눅해 지는데 회를 다 먹을 때까지 바싹 바싹한 고소함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싱싱한 해산물

보기에도 예쁜 먹거리가 나왔다. 개불, 해삼, 문어, 멍게. 개불은 생긴 것은 이상하지만 먹어 보면 쫀득 쫀득하다. 해삼도 비슷하다. 공기와 접촉하면 녹아 버리기 때문에 바로 먹어야 하지만 먹어 보면 쫀득한 맛이 일품이다. 문어는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다. 그러나 에서 주인 아저씨가 잡아 주신 문어보다는 역시 못했다.

무쟈게 구린 홍어

홍어는 전라도 사람이 아니면 먹기 힘든 음식이다. 대장금에도 나오듯 홍어는 사시 사철 먹을 수 있는 회이다. 그러나 싱싱한 회로 먹는 것이 아니라 숙성 시켜 먹는다. 보통 7일은 썩혀야 제맛이 난다. 따라서 먹어 본 사람이 아니면 먹기 힘든 음식이다. 일단 냄새부터가 무지 구리다. 처음 냄새를 맡은 사람은 똥 냄새로 알 정도이다. 그러나 먹어 본 사람은 침부터 도는 음식이기도 한다. 다만 원조 홍어는 냄새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일식 홍어는 향신료를 많이 넣은 듯했다. 그래서 전라도 지방에서 먹던 그 홍어의 맛은 느낄 수 없었다.

평상시 먹던 참치

내가 평상시 먹어 본 참치는 이런 참치였다. 역시 맛은 예전의 그맛이었다. 참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처럼 참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세 조각도 많은 양이다.

평범한 매운탕

일식의 끝이 우리나라 음식인 매운탕이라는 것이 인상적이다. 역시 시작은 일식으로 시작해도 끝은 우리음식으로 끝내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앞에 나온 맛있는 일식에 비해 매운탕은 평범했다. 우엉맘의 매운탕이 한 수 위다.

밥도 알밥

후식으로 무엇을 먹을 것인지 물어 봤다. 이것 저것 있는데 매운탕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매운탕이 나오지 않는지 물어보자 매운탕은 기본으로 나오고 밥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알을 좋아하기 때문에 알밥을 시켰다. 알에 식용 색소를 입힌 듯 상당히 알록 달록한 알밥이 나왔다.

남은 이야기

처음에는 비싼 가격과 첫번째로 서빙한 아가씨에게서 장사속이 너무 묻어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막상 먹고 나니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었다'. 먼저 음식이 너무 맛있다. 그리고 싱싱했다. 본 요리인 싱싱한 회도 맛있지만 중간 중간 나오는 반찬들도 모두 맛있었다. 일식 특유의 맛은 그리 즐기지 않지만 정통일식이라는 이름답게 깔끔 하고 맛있었다.

단순히 맛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보는 즐거움도 상당히 컷다.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에 좋다"고 요리외에 장식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서비스가 상당히 좋았다. 첫번째 아가씨는 아직 미숙했지만 두번째 아가씨는 아이들이 먹을 음식까지 알아서 가져다 주었다.

계산서에 찍힌 가격은 11만 천원이었다. 소주를 두병을 마셨고 아이들이 음료수를 마셨기 때문인 듯했다. 아무튼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자주 가기는 힘들어도 우엉맘의 생일과 같은 기념일에 한턱 쏠 때는 딱인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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