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읽었습니다. 명예욕이 강한 사람에게 있어서 정말 잔인한 형벌이군요.
기록 말살형이라고 하니, 순간 이집트의 그 여왕이 생각나는군요.
이집트식 이름에 익숙하지 못해서 기억못해서 적지 못하지만...
왕비였지만 아들 대신하여 후견인으로 나섰지만 나중에 가서 왕자를 누르고 여왕이 되어..
아니 남장을 함으로써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고 해요. 문화도 발전시켰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암튼 억누르며 살아갔던 왕자가 왕이 되자마자 그 여왕이 남긴 흔적들을 모두 지우느라 애썼다고 해요.
그 여왕이 한 일이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들을때마다 왕자가 파괴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찬란한 문화재로 꽃피우고 있었을까 조금 안타깝기도 하네요.
'담나티오 메모리아이'라는 형벌..정말 무섭군요...동시에 자기 국민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 자기 이익만 탐하는 권력자에게 효과적인 형벌이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동방견문록의 마르코 폴로가 중국 원나라의 자문 역활을 할때 비리에 연류된 왕의 인척을 처벌하는데 공헌을 했는데 그 처벌을 받게 되는 자가 마르코 폴로에게 결코 역사에 기록게 하지 않으리라 저주를 퍼부었다죠.
역시 마르코 폴로는 중국 역사에는 기록이 빠져 있다더군요.
제 생각으로는 미실은 드라마 만큼 강력한 권력을 가진것 같지는 않습니다.
실제 진평왕이 강력한 왕권을 가진 왕으로 보여 지고, ...
미실 역시 유신과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준것 같고....
역사서가 많이 부족해서 이래저래 복잡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것 같습니다....
흠... 역사적 오류에 대해 하나 더 추가하죠.
드라마에서 덕만(선덕여왕)이 지나치게 젊게 나옵니다. 천명과 덕만이 임술년생이라면 602년생이 됩니다. 문제는 천명의 아들 김춘추가 태어난 해입니다. ㅡㅡ; 603년에 태어났죠. ㅡㅡ; 어머니와 아들의 나이 차가 한 살밖에 안 되죠.
애초에 덕만을 20대에서 30대에 무렵에 왕위에 올리려다 보니 저런 문제가 생겼죠. 역사 속에서 덕만은 성골 남자가 없어서 4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왕위에 오릅니다.
왕조시대에 현군/폭군/암군의 차이는 그저 나라를 어떻게 했느냐의 차이와 신하와 반대파가 그를 어떻게 평가했느냐의 차이뿐입니다. 다만 그들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독재자입니다. (심지어 세종대왕도 현대를 기준으로 말하면 독재자입니다.)
나라를 잘 발전시키고 신하를 잘 다스리면 현군입니다.
나라를 발전시킨 것과는 별개로 국가 정책을 폭압적으로 행하거나 왕을 위해서만 행할 때 폭군이라 불립니다. 또한 왕의 통치와는 상관없이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 명분으로 삼아 왕을 폭군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냥 어리석은 왕은 암군이라고 부릅니다.
다만 이러한 평가는 그 군주의 치적이나 통치 행위와는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예컨대 조선 세조는 많은 치적이 있지만 그 통치 행위는 폭압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그를 현군으로 평가합니다. 조선 선조는 무능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역사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까댈 만큼 무능한 군주는 아니었습니다. (무능한 군주가 40년 동안이나 왕위에 있었다고 하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입니다.)
중국에서도 촉한의 유선을 암군이라 평가하지만, 유선이 친정할 때 촉한 국민에게는 대단히 살기 좋았습니다. 전쟁도 없었고, 적국이라 불리는 위나라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으니까요. 말년에 겨우 3~4년 정도 실정을 했습니다만, 제갈량의 후계자 강유는 유선보다 더 바보같은 짓을 했으니 피장파장이지요. (유선도 40년 이상 황위에 있었습니다. 더 대단한 점은 그의 치세에 복속민의 이탈은 있어도(남만인이 복속과 이탈을 반복합니다.) 내부인의 반란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또한 연산과 광해를 폭군이라 부르지만, 이것에도 이견은 있습니다. 연산이야 하도 폭정을 일삼았으니 뭐라 못하겠지만, 광해의 경우는 오히려 그 뒤의 인조가 훨씬 더 심했습니다. 인조 때문에 백성은 몇 배로 살기 힘들어졌으니까요. 그럼에도 그는 "인종"이 아닌 "인조"라 불립니다. ㅡㅡ; (선조도 처음에는 "선종"이었다가 나중에 "선조"로 격상했음을 볼 때 이것은 대단한 호평입니다.)
폭군 네로도 화재 당시에 그가 하프를 탔다느니 하는 낭설이 퍼져 있지만, 그는 화재 당시 흉년으로 굶주리는 로마 시민을 위해 식량을 꾸려고 로마를 떠난 상태였습니다. 폭군이라 불린 그의 행동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선량(?)하지 않습니까? 뭐, 그가 여러 사람에게 자살 명령을 내렸으니 폭군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황제의 기분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다지 흠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시저도 클레오파트라에게 자살을 명했고, 그밖에 많은 사람에게 자살을 명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사형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자살 명령은 오히려 사형수를 배려한 명령이기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왕조의 권력을 전제왕권이라고 합니다. 전제가 바로 독재를 의미합니다. 또 역사는 일반적으로 승자의 기록입니다. 현군, 암군, 폭군도 그 승자의 기록의 일부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조선은 왕의 나라가 아닙니다. 신하의 나라죠. 따라서 다른 나라와는 달리 왕권에 대한 견제 장치가 많습니다. 다만 논점과는 전혀 관련없는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쥐박쥐 같은 경우 꼭 기록에 남겨져야할 것이라고 봅니다.
국민들이 투표 제대로 안하면 이꼴 당한다는 교훈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수치이며 다시는 되풀이지 말아야할 짓입니다.
이런 점에서 꼭 국민의 수치의 상징으로 기록하여 앞으로의 역사에 그런 실수를 가능한 줄여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울나라 국민들 이번 일을 교훈삼아 더 이상의 만행을 보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