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추억의 프로그램이네요 ㅋ 저도 정말 많이 사용했던 프로그램인데,,,
저도 도아님 처럼 새롬데이터맨으로 텔넷을 이용했었습니다. 비슷한 장난(?)도 쳐 보았구요 ㅋ
불과 10년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한 것 같습니다.
정보 통신 문화도 그렇구요.
통신윤리 문제에 있어서 학교에서의 교육도 충분히 잘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롬 데이터맨 기억이 남니다.
저도 오랫동안 천리안을 거의 10년 동안 유료사용자로 사용했었는데..
처음 사용 때부터 학교 컴퓨터 실에서..
전화가 아닌 telnet 으로 접속해서 밤새 채팅을 했던 기억이 있네요.
집에는 모뎀 뿐만 아니라 컴퓨터가 없었기에.. ^^;
그래도 무사히 졸업은 했습니다. :)
이거 '추억'시리즈에만 댓글 다는 듯 합니다...^^
저는 좀 색다른 걸 해봤죠.
학교 전산실 서버가 VAX였는데, 터미널을 이용해서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94년? 95년?) 노트북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걸로 터미널 대신 연결해보려고 COM port 연결부분의 배선을 바꿔서 썼던 기억이 납니다.
노트북에 랜포트가 없었거든요.
터미널로는 저는 putty를 사용하고 있답니다. 저번 버전부터 시리얼까지 포함되서(기존에는 별도 프로그램) ssh/telnet/시리얼 용으로 편하게 쓰고 있답니다. sftp가 지원되지 않아 아쉽지만, winscp로 사용하니 편하더라구요. 친구녀석은 xshell을 추천하던데 putty가 더 가벼워 putty만 사용중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전 중학교 때 부터 천리안을 사용하다가(아부지 회사 아이디) 고등학교 와서 제 아이디를 하나 개설했었답니다. SLIP으로 하다가 PPP로 바뀌면서 인터넷을 지원하는 천리안 접속 프로그램이 나오고 그러면서 인터넷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때 뜨게 된 녀석을이 세이클럽, 스카이러브였죠. 확실히 천리안 자체 대화방들 보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네티켓이 없어서 금세 질리게 되더라구요
휴..그 당시 사설 BBS까지 운영했던 저로서는 남의 얘기 같지 않습니다. 전화선 한 포트늘리는데 초기비용으로 30여만원인가 들었으니까 10포트를 유지하는것은 대단한 것이었죠..
그러다 집단 전화국이 들어가 있는 오피스텔에서는 초기비용이 안든다는 걸 알고 사무실을 오피스텔로 옮겨 100회선을 따서 오픈하고, 리눅스서버에서 운영되던 TT선서비스(T1라인 두개를 물려, 이용자에게 전용전화선인 TT선으로 인터넷을 연결해주면, 전화요금부담없이 TT선의 월 고정액만 지불하고 인터넷을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를 시작하면서 IT업계에 본격진출한 셈입니다..^^;;
TT선을 이용한 인터넷 무제한 서비스는 참 좋은 아이템이었는데, 한국에 너무 빨리 ADSL이 보급되었습니당..
이야기에서 새롬데이타맨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지란지교를 꿈꾸며"란 것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야기에서 "지란지교..."를 거쳐서 "데이타맨"으로 넘어갔죠.
참~ 정감가는 이름도 좋았지만,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이야기나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접속이 안정적이고 다운속도도 빠르고 안정적이란 점이었습니다. 아기자기하게 꾸밀 수 있는 기능도 몇 있었구요....
제 기억으로는, 윈도 3.1 끝물에 나와서 윈도95 시절에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한 1~2년 반짝하고는 새롬 데이타맨에 밀려서 시들해졌던 것 같군요.
희명이 선아 상훈이 정말 낯이 익은 이름인데..
이리저리 서핑하다가 이렇게 찾게 되네... 그냥 잘 사는지..기억은 하는지.
말방이라는 이야기와 희명이 - 미장원을 하였지 아마 나중에 - 이야기가 나와서 지나가다 한마디.. 영문윈도우에서 한글되는 텔넷찾다가 - 물론 토큰2를 찾았지만 이건 화면이 이상하게 나오네 - 이렇게 지나가다 들름... 말방..정말 오래 간만에 들어보는 이야기.. 나도 연구소에 있었을 적이니깐 맨날 텔넷으로 들어가고 그랬는데.. 그때 당시 아이들 참 열심히 통신 했던것 같아.. 지금보다 더 불편하고 그랬음에도 불구 하고 그속에서는 믿을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 지금은 반대지만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