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너무 싫어 살짝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한 힘있는 나라가 다른 힘없는 나라를 정복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하는 것이 탐색전, 정보전입니다. 그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 선교사들이죠. 그들은 성경의 구절 중 가장 국민성을 나약하게 만들 내용만을 뽑아서 타국의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몬 다음 그나라를 접수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여러 열강에 둘러싸여 한끼 식사거리로 전락할 때 선교사들이 우르르 들어왔었습니다. 신약성서라는 것이 정권을 잡은 인간이 대중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 쓰기 위해 자기 입맛에 맞게 편집하고 짜맞춘 거라서 그게 종교 교리나 경전이 되는, 심지어 그 이상이 되는 이나라가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냐고 묻기 보다는 교회에 다니냐고 묻는 이 나라. 신앙심의 두터움보다 십일조 봉투의 두께로 믿음을 시험하는 이 나라. 원래 종교라는 것이 신의 존재유무나 믿음의 유무가 아닌, 삶의 방식을 바꾸고 개선하기 위한 마음가짐일 터인데. 우리나라는 그런 개념조차 없습니다
고인돌 만화를 성경과 비교하기는... 글쎄 (2008/12/24 15:06)
RE :
DEL
고인돌 만화는 한 사람이 썼죠.
성경은 수많은 사람에 의해 수천년이란 세월 동안 써졌죠.
참 신기한 것은 그 많은 사람이 다른 시대에 썼음에도 그 주제가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인데, 우리는 늘 배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우리를 품어주신다는 것이죠.
사람이 사람의 이익을 위해 쓴 것이라면 사람의 모습에 그럴듯하게 써놓겠지만, 아브라함, 야곱, 다윗, 베드로 등 성경의 유명한 인물에 대해 가감없이 허물까지도 적혀있는 책은 분명 자작이 아님을 반증합니다.
고인돌 만화와 비교하기는 급이 다르죠.
글쓰신 분의 논리적 비약이 지나치시군요.
하긴 기독교인이든 무신론자든 논리를 넘어선 믿음의 영역이며, 무신론자가 되는 것 또한 엄청난 믿음의 영역이니까요.
당신의 믿음이 참 신기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군요. podosam@paran.com 제 메일 주소입니다.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세상의 기원과 우리의 존재의 근원은 어떤 것이죠?
성경이 아닌 다른 설득력있는 설명 중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전 나름 제가 가진 이성을 가지고 정직하게 공부하고 있는 사람인데요.
광신은 자기 맘대로 믿는 것을 말하죠.
맹신은 무조건 믿는 것을 말하죠.
확신은 사실에 근거하여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저의 믿음은 근거가 있습니다. 역사 속에 실존했었던 예수와 그의 말에 근거합니다.
성경이 그것을 기록한 것은 다른 어떤 역사기록물과 배치되지 않습니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도 예수가 언급되고, 이스라엘 역사서인 요세푸스에도 기록되어 있죠.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일일이 기록된 성경이 그 이후에 고스란히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기에 저는 그 기록에 근거하여 저의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의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예수 당시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의 업적록에 따르면 아우구스투스는 평생 세번의 국세 조사(인구 조사)를 했습니다. 기원전 28년, 기원전 8년, 서기 14년. 모두 예수가 태어난 해와는 거리가 있으며, 그 대상도 외국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 것이 아니라 모두 국내에 있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즉, 성경이 거짓을 쓰고 있거나 예수가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이야기죠.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무시하고 오로지 성경에 나온 이야기만 믿기 때문에 광신이라고 하는 것이죠. 세상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하고 글을 쓰기 바랍니다. 소설을 성경으로 믿는 한 광신은 끝나지 않겠지만요.
성경에 보면 도마란 사람이 나오죠.
그는 예수님의 제자로 이성적이었으며 경험주의적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가 죽고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반응은 "그럴수 없다"였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직접 손가락으로 예수의 구멍뚤린 손바닥을 만져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보고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다"
보는 것, 직접 경험해보는 것은 참 쉽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많은 것이 있죠.
도아 님의 예쁜 딸이 지금 아빠를 사랑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알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보지 않고도 참 많은 것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 그건 인간이기에 가능한 능력의 일부 입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어이 없음은 여기에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예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반론하면됩니다. 그런데 반론은 못하겠죠?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의 실존은 성경외에는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죠? 그러니 광신이 되는 것이고요.
예수가 실존한다고 했으니 그 역사적인 증명부터 제시해 보기 바랍니다. 실존과 형체가 없는 사랑은 당연히 비교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즉, 님의 글은 여기부터 논리적 오류가 발생하죠. 실존했다면 그 실존의 증거를 대 보시기 바랍니다.
허허.. 도마란 말이 나오니 더욱 하고싶은 말이 많이 나오는 군요.
혹시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도마란 분은 원래 많이 유명하셔서 도마복음(혹은 토마스 복음서)이 외경으로 존재합니다. 분명히 "외경"으로 말이죠.
이분은 워낙 진실만을 말하려는 스타일인 관계로 도마복음은 예수의 삶을 내용으로 담지않고 예수의 가르침만을 담고 있습니다. "진실만을 말하는 스타일"인 관계로 말이죠.
덕분에 이분의 복음서는 이단문서로 취급을 받고 그다지 유명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예수에 관한 진리와 많이 부딪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죠..
특히나 "도마의 유아기 복음" 이라는 부분에서는 예수의 어린시절도 나옵니다. 물론 이 복음도 "외경"입니다.
거기에 보면(실제로 이복음은 출간도 되었고 기독교 서점에 가시면 쉽게 만나실수 있습니다.) "예수"라는 다른사람을 사랑한다는 사람이 지 맘에 안든다고 죽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실제로 전지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죽입니다. 햐~ 진짜로 죽이더군요.
그런데 이러한 부분이 "기독교"의 신앙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어서 역시 제외됩니다.
성경이라면 모든 복음을 보고 판단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런것들은 슬쩍 사라지더군요..
그 깡패 예수에 관한 행적도 자세히 알필요가 있는데 말이죠.
저도 공부하겠습니다. 함께 공부하면 좋겠네요. (2008/12/24 15:24)
RE :
DEL
크리스마스, 기독교, 예수, 도데체 무엇이길래 이토록 많은 관심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가?
저도 공부하겠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여러 의견을 존중하고 살펴보려는 기본마인드가 있죠.
함께 공부하면 좋겠습니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메리크리스마스.
600년 전 이순신 장군의 실존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1700년전 광개토 대왕은?
2200년전 시저는?
그가 실존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까요?
당시의 역사기록이 있죠.
이순신에 관한 기록은 난중일기를 비롯한 조선왕조실록에, 광개토대왕은 광개토대왕릉비와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나오죠. 시저에 관한 기록은 갈리아 전기에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당시의 역사기록이 있습니다. 요세푸스라는 이스라엘 역사가가 있습니다. 유대전쟁사와 유대고대사가 있죠. 예수 당시는 아니지만, 비교적 그 당시와 가깝게 살았던 사람이죠.
이슬람교의 경전이며 620년 경 저작된 코란에도 예수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성경은 그 기록의 엄중함을 지키기 위해 토시하나 그대로 옮기며 종교개혁 전까지 타국어로 번역도 안된채 그 순수성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면서도 현재 남아있는 수가 당시 다른 기록물과 비교하여 지대하게 차이납니다. 갈리아전기 사본이 현재 40부 정도가 남아있는데, 이 모두 저작 당시에서 상당한 시간이 흐른 250~300년 사이 써진 것들입니다. 성경은 예수 사후 제자들에 의해 기록되어 AD60~100년 사본들이 다수 발견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1300여부가 넘습니다. 사본의 수와 원본과의 년도차이나 성경은 그 사실성에서 다른 기록물에 비해 더 분명합니다.
시저의 갈리아 정복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광개토대왕이 만주를 정복했다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성경의 예수는 실존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예수가 하는 말이 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저나 광개토대왕과 다르죠. 그러나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의 존재, 그의 말.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이죠.
그러니 성경 이외의 역사로 증거를 대라는 것입니다. 역사책은 고고학에 의해 그 진위 여부가 가려집니다. 따라서 그런 증거가 있으면 대라는 것입니다. 성경만 가지고 성경에 나오니 실존했다고 하지 말고요. 지금 대화하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코란은 경전이니 빼고 이야기 해야죠... 요세푸스는 예수가 죽은지 한참 뒤에 등장한 유대 역사가이죠. 중요한 것은 당대의 기록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자신이 아는 것이 역사는 아닙니다. 시이저가 쓴 책 중 남아 있는 것은 갈리아 전쟁기와 내전기입니다. 그러나 당시 최고의 언론이었던 키케로의 편지와 수많은 저술, 그리고 로마의 역사에의해 씨이저의 존재는 수없이 증명됩니다. 갈리아 전쟁기의 사본은 사실 역사가 아닙니다. 씨이저의 보고서이죠. 물론 역사적 가치는 있습니다만.. 또 앞에서 설명했듯이 예수가 태어날 때에는 인구 조사가 없었습니다. 누군가 거짓말을 한 것이죠.
[b]미국에 가서 한국말만 계속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b] 미국에 가서는 영어로 얘기해야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비기독교인과 예수의 실존을 이야기 하고 싶다면 성경이 아닌 역사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문제는 기독교인은 이정도의 상식도 모르는 사람들이죠?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실존은 님 옆에있는 기독교인하고 하면 됩니다. 저하고는 역사속 예수를 이야기하면되고요. 이제 이해가 되시는지요? [b]님은 소설책을 성경으로 믿지만 일반인은 이런 소설 보다는 역사를 더 믿습니다[/b].
네이버에 쳐보니 이렇게 나오네요.
요세푸스(37-100), 유대 역사가. 66년부터 73년까지 유대 민족주의자들이 로마에 대해 일으킨 반란에 가담하여 갈릴리 지휘관으로 싸웠다. 반란이 실패하자 투항하여 로마에 살며 책 쓰는 일에 몰두하였다. 《유대전쟁사》, 《유대고대사》등에서 유대 역사와 유대교의 우월성에 대해 기술하였다. 예수 당시와 그리 떨어지지 않네요. ^^;
종교적 정경과 역사서를 구분하신다고 했는데, 어쩌죠? 성경이 역사서인데, 코란 역시 역사서이고요. 순수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 유대전쟁사, 유대고대사는 그럼 뭐냐고요? 그것도 역사가의 사상과 철학으로 취합된 것이기에 어느정도의 종교적 성향이 들어가 있죠. 역사기록이라는 것은 과거에 대한 기록이죠. 성경도 당연히 과거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없던 것을 쓴게 아니라 그 당시 중요한 일을 적은 것입니다. 만일 과거의 기록에 대해 우리가 부정한다면, 지금 우리는 아무것도 인정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많은 비판적인 글 중에서 예수의 실존까지 부정하는 글을 보고,
참 오랜시간동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시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예수의 실존까지 부정하려는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까지 예수를 부정하고 지우려는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요?
기독교가 요사이 부패했다면 다시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까지 부정하는 건 아예 소설을 쓰는 겁니다.
[quote]기독교에 대한 많은 비판적인 글 중에서 예수의 실존까지 부정하는 글을 보고,
참 오랜시간동안 글을 쓰고 있습니다. [/quote]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글에는 예수 이야기는 아예없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보고 님이 "뜸금없이 고인돌은 한사람이 그린 만화다"라고 들고 나왔죠. 그래서 예수의 실존까지 나온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글을 썼는지도 모르시는 것인가요?
[quote]제가 시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예수의 실존까지 부정하려는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기 때문입니다. [/quote]
님의 보편이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얘기하죠. 역사속 예수는 어디에 있죠? 태어난 기록부터 없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도 인정하지만 생애 중간 부분도 사라졌죠. [b]보편[/b]이라는 말 뜻부터 아시고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의 성경을 기반으로 한 것을 보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b]종교적인 주장[/b]에 불과할 뿐이죠. 역사적으로 예수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b]예수가 존재한다는 것이 성경이 소설이라는 반증이죠.[/b]
[quote]그렇게 까지 예수를 부정하고 지우려는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요?[/quote]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이 예수를 부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리고 있지도 않은 존재는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있지도 않은 존재를 소설을 기반으로 실존으로 만드는 광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순서겠죠.
[quote]기독교가 요사이 부패했다면 다시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까지 부정하는 건 아예 소설을 쓰는 겁니다.[/quote]
소설이라면 어째서 소설인지 증거를 대면됩니다. 소설을 근거로 들지말고요.
참고로 [url=http://xbible.com.ne.kr/list.htm]성경의 진실[/url]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소설이라는 넘치고 넘치는 증거는 많습니다.
이분은 신학쪽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신학적으로 접근하고자 합니다.
먼저 예수라는 이름은 그때 당시에 무지하게 많이 쓰이던 이름이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철수라는 이름처럼 말이죠. 당연히 예수라는 이름이 많기때문에 신약성경에는 특별히 "나사렛의 예수"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합니다. 머 일단 예수가 존재한다 치더라두요. 이 예수를 특별히 다른 이름도 아닌 "나사렛의 예수"라고 칭하는 것은 실제로 그 이외에 많은 예수가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신학을 좀 보시면 아실수도 있는데 현재의 학설중에 하나는 예수라는 것이 단일명사가 아니라 복합명사 혹은 단체를 지칭하는 말일수도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스도"라는 명칭처럼 말이죠.
그러니 머 이것자체가 예수라는 단일인물에 의한 조작이라기 보다는 그 단체가 만들어내는 교리서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네요.
도아님을 보며 항상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런 주제로 글을 올리면 언제 어느 순간에 습격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의연하게 글쓰고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신단 겁니다.
만약 제가 블로그를 운영중이라면 제 생각이 옳더라도 이런 주제로는 글을 안 올릴 겁니다.
귀찮아서..
예.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2000년전에 쓰여진 소설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는 진리로 알고 있으니... 병도 이런 병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동영상에도 나오지만 정작 구약을 쓴 민족은 하나님의 창조론이 뻥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아 참, 듣기로는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정식 경전으로 채택되었다고 하더라구요...;; 구약은 '유대 민족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이라고 해서 옛 약속이라는 뜻으로 舊約이라고 쓰고 신약은 '인류와 하나님 사이의 언약'이라고 해서 새로운 약속이라는 뜻으로 新約이라고 쓴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예수는 실존인물이 맞습니다 ^^;; 성경에서 알려진 바와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았을 지 모르지만 말이지요;;
제가 다닌 학교가 미션계열이라 기독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성경도 몇번씩 읽었고요. 다만 예수라는 이름의 사람이 역사적으로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독생자 예수는 비기독교계 사료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나오는 것은 오로지 기독교계 사료에만 나오죠.
비기독계열에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나요? 흠... 생각보다 기록이 열악하다는 말은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일관된(이 부분은 잘 모르겠네요;;) 진술을 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허구는 아니라는 주장을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덱스터//
1. 비성경쪽 기록엔 예수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2. 저 위에도 적었는데, 메인스트림인 마태, 마가, 누가(베드로? 정확히는 기억이 가물) 복음에 기술된 유다의 기록이 서로 다릅니다.
기록 순서대로 처음엔, 그냥 범인이 있다 → 스프(? 좌우지간 국물)에 손 함께 담근 놈이 범인이다 → 그놈은 자살했고, 인간 취급도 못 받고… 등등 으로 말이죠.
11조 글을 보니 생각나는게 있어서 안쓸수가 없군요..
그놈의 11조라는 것이 참 웃긴일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10%를 떼라는 것은 구약성서의 레위기27장 30절에 나옵니다.
[quote]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quote]
근디 요놈은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에 성소를 관리하던 레위지파에게 내려지는 특혜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정확한 의미는 당시의 사회가 종교와 정치가 같이 있던 사회였기 때문에 이것은 일종의 세금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지금의 소득세와도 같은 의미죠..
그렇다면 지금의 현 사회에서 나라와 종교가 분리된 현시점에.. 아니 그럼 우리는 소득세를 두번 띄어야 하는겁니까?
너무 웃기는 발상 아닙니까? 이건 진짜로 거기 써있는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 해석하는 해괴망칙한 발상이 아닌가 싶네요..
10일조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세금입니다. 로마인은 식민지 인들한데 세금을 받았는데 이때 받은 세금이 10일조(10분의 1세)입니다. 따라서 현재 기독교에서 10일조를 걷는다는 것은 교인을 식민지 노예로 생각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원래 유대교는 수익의 2%를 예루살렘에 기부합니다.
[quote]쥐박이가 아니면 소통하라는 멘트가 아이러니하군요.[/quote]
저는 님글이 더 아이러니하군요.
[quote]도아님 글을 예전부터 몇번 봐왔지만 지기주장을 내세우는데 더 익숙한 것 같아서요.[/quote]
님 글은 이 댓글이 처음이지만 단어의 뜻도 모르고 사용하는데 익숙한 것 같은데요?
[quote]그들이 믿음을 강요하니까 나도 내 믿음을 강요한다는 피장파장 논리인가요.[/quote]
강요가 무슨 뜻인지는 알고 사용하는 것이지요? 자기 블로그에 자기 주장을 쓰는 것을 강요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쥐박이가 아니면 소통하라"는 글이 강요라고요? 그러니 뜻이나 알고 쓰라는 이야기입니다.
[quote]어라? 내 리플들 다 지웠네?[/quote]
꼴통짓도 최소한의 머리는 있어야 한단다. 어디다 댓글 단지도 모르지? 허긴 너 같은 꼴통이 어디 너 하나 뿐이겠니. 너와 니 주변에 널렸지? 개독교가 욕을 먹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란다. 너처럼 개념은 먼산인 애들이 많아서 그렇지.
그냥 진화론 열심히 믿고 살면 되겠다..^^ 어쩌나 태어난 인생, 엄마 아빠 재미보다 거저 재수없이 태어난 인생... 어떻게 살아도 그냥 70-80 인생, 살다가 가면 그만인것을...
그래도 양심있다고 도도한척하는 것은 진화론에서 어떤 경우로 진화된 양심인지? 굳이 그렇게 핏대 올리고 침튀겨가며 힘들게 사냐? 걍 약육강식의 법칙대로 살렴.. 개독교가 그리 싫어서 핏대올리면 환경법칙에 따라 스트레스 받아 일찍 죽거덩...
진화론자의 고고함을 함 잘 보여주면 좋겠당^^ 어떻게 사는것이 개독교를 넘어서 진화론자로서 때깔나게 사는 방법인지... 미래도 없고 인생도 호흡있을 때 뿐이면 그렇게 고고한척 사랑을 부르짖을 필요 없잖니?.... 함 보여주라.. 어떻게 사는게... 끝내주는 삶인지...
괜시리 개독교 박멸하는게 인생의 진리라는 그런 쏠리는 말 말고... 진짜 샘플을 보여다오.. 나두 어설피 아는 지식을 좀 정리해보자...
엄청난 뒷북이긴 한데 나사렛 예수의 기적에 대해서라면 몰라도 실존인물이 아니라고 할 증거는 없습니다.
성경쪽이 아닌 사료에서는 예수의 존재에 대한 언급이 없기에 예수가 허구라는 주장을 하시는데 폰티우스 필라투스가(유대식 이름은 본디오 빌라도) 예수를 처형했다는 기록은 요세푸스의 역사서에도 분명히 언급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당시 로마인의 기록에 예수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는 것은 예수가 변방의 듣보잡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요세푸스가 예수에 대한 언급을 한 것도 그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지요. 예수는 로마 입장에서는 전혀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요세푸스가 예수가 처형되었다고 하는 해보다 몇년 늦게 태어나서 30세 전후에 역사서를 썼다고 그것이 허구라고 한다면 싯다르타의 존재 또한 허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역사적 사료란 존재할 수 없는겁니다. 게다가 요세푸스는 로마에서 군생활까지 한 인물이기에 유대적 세계관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당시 유대교인은 기독교인을 증오했으므로 그가 기독교의 입장에서 서술했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하겠지요.
한국 개신교의 악행과 타락에 대해서 비판하는것은 좋으나 성경이 대부분 허구라고 해서 예수의 존재조차 부정하는 것은 역사의 존재에 대한 부정일 겁니다.
처형된 목수가 실존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예수를 보면 인구조사를 하러 가다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인구조사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아우구스투스의 업적록에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로마의 인구 조사는 외국에서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예수는 어떤 역사에 나오는지요?
제가 실존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성경의 예수와 일치하는 인물은 어떤 사서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여러 일들을 짜집기한 종교고요. 개인적으로 저는 **인간 예수**의 존재는 인정합니다. 분명 구약의 증오의 하나님을 신약의 사랑의 하나님으로 바꾼 분이니까요. 기독교의 모순은 유대교 사회에 인정받기 위해 버려야할 구약을 끌어 앉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도 하고요.
'예수가 죽은 것이 30대이니 죽은 뒤에 태어났죠. 그리고 요세푸스가 역사서를 쓸때가 30대죠. 그러니 한세대가 지났습니다. 신화가 만들어지기 충분한 시간이죠.'
이런 언급을 하면서 요세푸스의 역사서조차 구운몽같은 고전설화로 취급했지 않습니까? 그러니 누구라도 도아님이 인간 예수의 존재마저도 부정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사료로써의 존재가치가 충분한 저작마저 그런 억지논리로 부정하는 사람이라면 인간 예수의 존재또한 부정할 것일테니까요. 요세푸스가 예수와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이 아니니 믿을수 없다면 도아님은 2000년 후를 사는 사람인데 누구보고 도아님의 주장에 수긍하라는 얘깁니까? 자가당착이죠.
그리고 동정녀 마리아가 호구조사를 피해 도망가다 예수가 나왔다는 얘기는 도아님 언급대로 역사적으로도 불가능한 얘기죠. 하지만 그런 얘기는 한 인물의 신격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신화일 뿐입니다. 그 얘기 하나로 예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빈약한 논리입니까? 리차드 도킨스조차도 예수의 존재 자체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저는 예수가 성경에서 언급한대로의 존재라고는 한번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이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예수교 광신도들 뿐이죠. 자신의 주장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거만한 태도입니다.
저도 한국 개신교를 무척이나 혐오하는 사람이지만 도아님의 주장에는 일관된 논리가 없습니다. 사람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논리가 필요한데도 말이죠.
>도아님은 분명히 리플로
>'예수가 죽은 것이 30대이니 죽은 뒤에 태어났죠. 그리고 요세푸스가 역사서를 쓸때가 30대죠. 그러니 한세대가 지났습니다. 신화가 만들어지기 충분한 시간이죠.'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이 글이 쓰여진지 언제죠. 님은 님이 달고 다린 모든 댓글을 다 기억하나요?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의 글에 댓글을 달때 댓글을 근거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굳이 이야기해야 할 상황이라면 **반드시 그 부분을 인용**을 하죠. 그런데 뭘 잘못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죠?
>이런 언급을 하면서 요세푸스의 역사서조차 구운몽같은 고전설화로 취급했지 않습니까
**신화가 만들어지기 충분한 시간**이라고 한 것을 어떻게 **역사서를 고전설화 취급을한 것**이라고 이해하는지 참 오묘한 해석법이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기본적으로 **신화가 만들어지기 충분한 시간이니 오류가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죠. **글자는 읽을 줄 알아고 그 뜻의 이해는 오로지 비약적 추론으로만 가능한 모양**이군요.
> 사료로써의 존재가치가 충분한 저작마저 그런 억지논리로 부정하는 사람이라면 인간 예수의 존재또한 부정할 것일테니까요.
이해의 부족에서 한 추론이라는 것은 아시겠나요? 나머지는 굳이 답할 필요를 못느껴서 간단히 하겠습니다.
'신화가 만들어지기 충분한 시간이라고 한 것을 어떻게 역사서를 고전설화 취급을한 것이라고 이해하는지 참 오묘한 해석법이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라... 자신이 무슨 리플을 달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확실하군요.
도아님 리플의 뒷부분을 요약해서 써놓으니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자기 자신의 주장을 직접 반박하는군요. 도아님 리플의 인용부분의 바로 뒷내용입니다.
'소설을 역사라고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쓰여진 모든 것이 역사서라면 구운몽도 역사서죠. 그리고 그 것이 역사서 이기 위해서는 다른 역사와 일치해야죠. 그런데 왜 예수가 태어날 때부터 일치하지 않는 것일까요?'
자... 자신이 무슨 말을 했었는지 이제 알겠습니까?
또한 '님은 님이 달고 다린 모든 댓글을 다 기억하나요'라구요? 자신이 일관된 논리로 주장을 하는 사람이라면 본문이던 리플이던간에 그 일관성이 흐트러질 일이 없습니다. 일관된 논리로 주장한 게 아니라는걸 직접 증명해 주셔서 감사하군요.
게다가 도아님의 본문에는 예수의 존재여부에 관한 내용이 없습니다. 이거 어쩌죠? 본문조차 기억을 못하시네요?
아무래도 이해력이 너무 떨어지는 분인 듯 하니 간단히 요약해 드립죠.
1. 글쓴이는 성경이 아닌 사료에는 예수가 없다고 하여 예수의 존재를 부정했다.
2. 하지만 예수는 성경이 아닌 사료에도 등장하며 폰티우스 필라투스가 처형한 목수와 성경의 예수는 동일인물이라는 사료는 존재한다.
3. 그렇다고 해서 그 목수가 성경에서 서술한대로의 기적을 행했다고 믿는 것은 예수교 광신도들 뿐이며 예수가 존재한다고 해서 성경이 사실이라는것은 아니다. 예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글에 반박한 사람들이 성경예수=실제예수라고 주장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주장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확대해석이요 오만일 뿐이다. 현대에 쓰여지는 수많은 자서전조차 개인을 미화하는데 성경이야 오죽할까?
최소한 저는 제 주장에 반박하는 사람의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 제 주장이 뭐가 잘못됐는지 다시한번 읽어봅니다. 자신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면 다시한번 읽어보고 자신의 주장에 잘못된 점이 있는가 확인하는 건 기본 아닙니까?
>'신화가 만들어지기 충분한 시간이라고 한 것을 어떻게 역사서를 고전설화 취급을한 것이라고 이해하는지 참 오묘한 해석법이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라... 자신이 무슨 리플을 달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확실하군요.
머리를 망치로 쓰는 종족이 확실하군요.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이 글이 쓰여진지 언제죠. 님은 님이 달고 다린 모든 댓글을 다 기억하나요?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의 글에 댓글을 달때 댓글을 근거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굳이 이야기해야 할 상황이라면 반드시 그 부분을 인용을 하죠. 그런데 뭘 잘못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죠?
라고 했죠. 그런데 이 글을 읽고 바로 머리속에서 지우는 대단한 머리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먼저 논란을 짚어보죠. 기본적으로 쓰여진지 오래된 글의 댓글에 문제를 삼고 싶다면 해당 댓글의 댓글로 달거나 문제가 되는 부분을 인용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입니다(물론 댓글에 대한 반론은 올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죠). 그런데 그렇게 했나요? 그러면서
>억지 주장 하나때문에 다른 정당한 비판마저 빛을 잃지 마시길...
라고 하죠. **지얼굴의 똥은 보지 못하고 똥낀 눈으로 본 다른 사람의 얼굴이 더럽다는 격**이죠. 댓글에 댓글을 다는 것으로 봐서 방법을 몰랐다고 우기기는 힘들 것입니다. 즉, 논란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습니다. **머리가 나쁜 것은 이해하겠습니다**. 인터넷에 망치족이 의외로 많으니까요. 그러니 **머리가 안되면 예의부터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소설을 역사라고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쓰여진 모든 것이 역사서라면 구운몽도 역사서죠. 그리고 그 것이 역사서 이기 위해서는 다른 역사와 일치해야죠. 그런데 왜 예수가 태어날 때부터 일치하지 않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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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신이 무슨 말을 했었는지 이제 알겠습니까?
>
>또한 '님은 님이 달고 다린 모든 댓글을 다 기억하나요'라구요? 자신이 일관된 논리로 주장을 하는 사람이라면 본문이던 리플이던간에 그 일관성이 흐트러질 일이 없습니다. 일관된 논리로 주장한 게 아니라는걸 직접 증명해 주셔서 감사하군요.
아무 문제 없죠. 머리가 나쁘신 것 같으니 설명해 드리죠.
* 예수의 출생, 기독교쪽 기록있음. 로마쪽 기록없음
* 예수의 죽음, 기독교쪽 기록있음. 로마쪽 기록있음
로마가 죽었을 당시 로마쪽에도 기록이 있습니다. 본디오에게 책임을 물었으니까요. 물론 이스라엘의 한 목수의 처형에 대한 내용이 아닙니다. 총독으로서 사회불안의 책임을 물은 것이죠. 즉, 요세프스의 사서에는 일치하는 부분도 있고 틀리는 부분도 있습니다. 저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소설을 역사라고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쓰여진 모든 것이 역사서라면 구운몽도 역사서죠. 그리고 그 것이 역사서 이기 위해서는 다른 역사와 일치해야죠. 그런데 **왜 예수가 태어날 때부터 일치하지 않는 것**일까요?'
이 부분이 왜 나왔냐고요? 머리를 망치로 사용하시니 설명해 드리죠.
> 성경이 역사서인데, 코란 역시 역사서이고요.
이 부분에 대한 반론입니다. **왜 예수가 태어날 때부터 일치하지 않느냐는 물음**을 통해 **기독경에 대한 것임을 명시**했죠. 물론 머리가 나쁘니
>요세푸스(37-100), 유대 역사가. 66년부터 73년까지 유대 민족주의자들이 로마에 대해 일으킨 반란에 가담하여 갈릴리 지휘관으로 싸웠다. 반란이 실패하자 투항하여 로마에 살며 책 쓰는 일에 몰두하였다. 《유대전쟁사》, 《유대고대사》등에서 유대 역사와 유대교의 우월성에 대해 기술하였다. 예수 당시와 그리 떨어지지 않네요. ^^;
이 부분에 대한 반론으로 생각했겠죠? 다시 말합니다만 **글은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최소한 저는 제 주장에 반박하는 사람의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 제 주장이 뭐가 잘못됐는지 다시한번 읽어봅니다.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아시겠죠. 글을 **한번**도 제대로 읽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이 **다시** 읽어 볼까요?.
>게다가 도아님의 본문에는 예수의 존재여부에 관한 내용이 없습니다. 이거 어쩌죠? 본문조차 기억을 못하시네요?
참 어리석군요. 기억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블로그에 찾아 보면 나옵니다. 제 믿음이니까요.
>자신이 일관된 논리로 주장을 하는 사람이라면 본문이던 리플이던간에 그 일관성이 흐트러질 일이 없습니다.
라고 했죠. 예.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 없는 내용이지만 댓글로 쓴 것이죠. **쓰여진지 1년이 다된 글에 달린 댓글까지 기억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이니 블로그의 모든 글과 댓글을 읽어 보고 글을 써야하지 않을까요? 블로그 검색창에 **인간 예수**로 검색해 보세요.
>최소한 저는 제 주장에 반박하는 사람의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 제 주장이 뭐가 잘못됐는지 다시한번 읽어봅니다. 자신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면 다시한번 읽어보고 자신의 주장에 잘못된 점이 있는가 확인하는 건 기본 아닙니까?
예.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글인지 알려 줘야 가능하죠. 그러니 문제가 되는 댓글의 댓글로 다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런데 뜸금없이 본문에도 없는 **요세프스의 기록을 믿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억지 주장 하나때문에 다른 정당한 비판마저 빛을 잃지 마시길...**
이렇게 설레발을 쳤습니다. 저는 요세프스의 기록을 믿습니다. **요세프스의 기록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 본문에 없습니다. 또 댓글로 단 기억도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재주로 제 댓글을 다시 읽어 볼까요? 이런 문제 때문에 해당 댓글에 댓글로 달거나 최소한 인용을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머리를 망치로 쓰는 종족**에서 **예의 없는 누리개로 진화**했다는 것을 이해하시겠죠? 아울러 기본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없었습니다. 이해를 못하겠죠. 다시 설명해 드리죠.
>네이버에 쳐보니 이렇게 나오네요.
>요세푸스(37-100), 유대 역사가. 66년부터 73년까지 유대 민족주의자들이 로마에 대해 일으킨 반란에 가담하여 갈릴리 지휘관으로 싸웠다. 반란이 실패하자 투항하여 로마에 살며 책 쓰는 일에 몰두하였다. 《유대전쟁사》, 《유대고대사》등에서 유대 역사와 유대교의 우월성에 대해 기술하였다. 예수 당시와 그리 떨어지지 않네요. ^^;
>종교적 정경과 역사서를 구분하신다고 했는데, 어쩌죠? 성경이 역사서인데, 코란 역시 역사서이고요. 순수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 유대전쟁사, 유대고대사는 그럼 뭐냐고요? 그것도 역사가의 사상과 철학으로 취합된 것이기에 어느정도의 종교적 성향이 들어가 있죠. 역사기록이라는 것은 과거에 대한 기록이죠. 성경도 당연히 과거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없던 것을 쓴게 아니라 그 당시 중요한 일을 적은 것입니다. 만일 과거의 기록에 대해 우리가 부정한다면, 지금 우리는 아무것도 인정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이 글에 대해
>예수가 죽은 것이 30대이니 죽은 뒤에 태어났죠. 그리고 요세푸스가 역사서를 쓸때가 30대죠. 그러니 한세대가 지났습니다. 신화가 만들어지기 충분한 시간이죠.
>
>소설을 역사라고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쓰여진 모든 것이 역사서라면 구운몽도 역사서죠. 그리고 그 것이 역사서 이기 위해서는 다른 역사와 일치해야죠. 그런데 **왜 예수가 태어날 때부터 일치하지 않는 것**일까요?
>
>역사가 무엇인지 부터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물론 소설을 성경으로 아는 기독교인에게는 이런 말이 필요없겠지만요.
라고 답했습니다. 즉, 이 글에 **요세프스의 기록을 믿지 않는다**는 **요세프스의 기록이 소설이다**라는 내용은 없습니다(이 부분은 님이 머리를 망치로 사용한 결과죠). 앞에서 설명했듯이 *신화가 되기에 충분한 기간이니 **요세프스의 기록**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첫번째 문장에 대한 답)*. 그리고 실제 오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쓰여진 것(기독경)이 다 역사서라면 구운몽도 역사서다(두번재 문장에 대한 답).*라고 답한 것이죠.
저는 요세프스의 기록 중 예수 처형에 대한 기록은 믿습니다. 로마서에도 나오는 내용이니까요. 즉, 님의 첫 주장은 저 역시 알고 있고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는 것으로 이해한 것**은 **님의 머리**죠. 그리고 그 나쁜 머리로 이해한 결과를 잘난척 하고 싶어서
>억지 주장 하나때문에 다른 정당한 비판마저 빛을 잃지 마시길...
라고 썼죠. 똑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다투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한 사람의 이해력이 **무척**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글은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을 때
>최소한 저는 제 주장에 반박하는 사람의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 제 주장이 뭐가 잘못됐는지 다시한번 읽어봅니다. 자신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면 다시한번 읽어보고 자신의 주장에 잘못된 점이 있는가 확인하는 건 기본 아닙니까?
이렇게 했다면 이런 논란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스스로 거짓말 장이**임을 자인한 셈이죠. 따라서
>머리가 나쁘면 노력이라도 하시길 바랍니다.
라는 말은 **님의 나쁜 머리에 대한 자학**이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군요. 아시겠나요?
참고로 이 글을 통해 님은 **망치족**, **누리개**, **거짓말장이**의 최악의 진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댓글을 달면서 어떤 종족으로 진화할지 궁금해 집니다. 그러나 **망치족과의 대화는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더 이상 댓글을 단들 망치족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할 능력은 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