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교회에서 헌금하는 것으로 인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줄로 압니다.
그리고 헌금이 교회재정의 주 수입원이며 실제로 여러 목사님들이 여러 교회들이
이 재정을 함부러 사용하여서 많은 물의를 일으킨 적도 많습니다.
이 부분 먼저 기독교인으로서 이글을 보시는 분들께 대신 사죄말씀이라도 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교회에서 헌금 많이 내라며 강요하고...
또한 본인이 그말을 듣기에 부담이 된다면 헌금 안하시면 됩니다^^
헌금을 하고 않하고는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입니다.
(헌금은 교회에게 사람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에 성전에 헌금 하는 사람을 주욱 지켜보고 계시던 예수님께서
가장 적은 돈 "두 렙돈"을 바친 과부를 칭찬 하시며
이 사람이 제일 많이 넣었다며 칭찬 하셨습니다.
말씀의 요지는 뽐내기 위해, 헌금을 넣는 "연보궤"에 동전으로 몽땅 가져와서
'내가 이렇게 부자라서 이만큼 헌금 한다~'라는 식으로 헌금하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많은 돈이 아닌...
자신의 가장 소중한것을 희생하면서도 하나님께 바치려는 과부의 마음이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일반적인 상식이상의 것을 상식이상의 방법으로
강요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헌금 때문에 신앙생활이 어렵고 마음에 부담이 커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헌금의 액수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소신껏 정성껏(액수가 아닙니다)
하시면 될듯합니다.
그래도 부담이 되고 부담을 준다면 다른 교회를 알아보는 것도 좋겠죠
끝으로 위에 올려주신 동영상의 노래 가사를 전부 가져와 봤습니다.
[quote]1.예배시간에 꼭 오분씩 늦어 헐레벌떡 뛰어가는 성도
주일학교 공과를 교회가는 버스안에서 한번 읽어보는 교사
남들은 직분맡아 봉사하는데 수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나중된자 이런 믿음은 주님이 원하지 않죠
오 안돼요 안돼 주님이 원하지 않죠
2.성가대연습 제대로 안하고 이상한 소리내는 성가대원
설교시간 처음부터 졸기시작해축도할때 정신이 드는 성도
헌금을 준비않고 지갑속에서천원짜리 기막히게 찾아내는자
이런 믿음은 주님이 원하지 않죠
오 안돼요 안돼 주님이 원하지 않죠
3.예배 시간에 삐삐소리로 모두의 시선을 받는성도
교회일을 상의할때 반대를 위한 반대로 분위기 망치는 성도님
교회문 나갈때 주님과 작별하여 생활속에서 주님과는 별거하는자
이런 믿음은 주님이 원하지 않죠
오 안돼요 안돼 주님이 원하지 않죠
우리의 예배는 감격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봉사는 사랑이 넘쳐야 하는데
우리의 믿음은 생명이 있어야 하는데
안돼요 안돼
선생님 집사님 장로님 성도님
성가대 여러분[/quote]
일부분만 보시지 마시고 전체를 다함께 보시면 위 가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아실 것입니다. 절대 돈의 액수인 "천원짜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신에게 바치는 예물을, 헌금을 정성껏 준비하지 않고 푼돈 던져 넣듯이 하지 말란 얘기입니다.
다른 가사 부분들도 결국엔 신앙생활 대충대충하지 말라는 듯입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보다 나은 신앙생황을 위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일 뿐입니다.
또한 이 노래 역시 도아님께서 앞서 언급한 책 "특종! 믿음 사건이다"와 같이
비기독교도를 향한 곡이 아닙니다. 기독교도들에게 바른 신상생활태도는
이런 것이다 하고 재미있는 음율에 맞춰 노래로 만든 것입니다.
당연히 비기독교인이 보고 듣기에는 아무런 감흥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듣게 되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죠^^;;
[quote]다만... 교회에서 헌금 많이 내라며 강요하고...
또한 본인이 그말을 듣기에 부담이 된다면 헌금 안하시면 됩니다^^
헌금을 하고 않하고는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입니다.[/quote]
예. 그렇긴 하지만 교회가 욕을 먹는 것은 헌금을 당연한 세금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더군요.
그리고 노래의 일부긴 하지만
[quote]헌금을 준비않고 지갑속에서천원짜리 기막히게 찾아내는자[/quote]
는 그리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도 사랑의 기독교가 아닌 미움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헌금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푼돈 뿌리듯 한다는 뜻이라면 이런 식으로 헌금하는 사람을 비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교회 다닐 시간도 없이 바쁜 사람이 급히 교회에 들려 급하게 헌금해도 위의 가사에는 딱 걸립니다. 사랑의 기독교라면 저런 비꼼보다는 다른 표현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bluenlive님//
앞서 글에 썼듯이 헌금은 정성껏 준비함이 필요합니다.
본래 구약시대에는 헌금이 아닌 헌물(신에게 바치는 물건,물질 등을 일컫는말)이었죠
성경에 헌물은 소, 양, 비둘기, 곡식가루 등으로 바쳤습니다. 소,양,비둘기,곡식가루를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형편에 따라 자신이 선택하며 제사의 종류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큰거 내든 작은거 내든 상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위 항목에 조건이 붙는데 그 조건은...
아래와 같습니다.
기름지고 살진것, 첫 번째 난것, 흠 없고 순전한 것
등등입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헌물을 마련하는데는 찾는 수고로움과 보살피는 정성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시대가 변하여 이제 돈으로 바칩니다. 하지만 그 본질만은 변하지 말아야 하기에 헌금을 바칠 때에도 정성껏 할 것을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부분 교회에서 헌금할 때 미리미리 준비하도록 헌금 봉투를 마련해 둡니다. 그 봉투에 넣어서 헌금하도록 하죠
액수는 보통 형편에 따라 개인이 정합니다.
위 곡은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가사 또한 사실적으로 표현 한것입니다.
"헌금을 준비 않고 지갑속에서 천원짜리 기막히게 찾아내는자"
저 또한 위와 같은 경험이 많이 있기에 알지만
헌금을 준비 해두지 않았다가 헌금 순서가 되면
급하게 지갑을 뒤집니다. 지갑속에 만원짜리와
천원짜리가 있습니다.
그 상황이 되면 순간 갈등 들어갑니다^^;;ㅋㅋ
'만원 짜리 내긴 아깝고..
학생인지라 부담도 크고..'
이런 생각에 대충 천원짜리 한,두장 넣습니다.
지나고 나면 정말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헌금입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이러한 헌금은
받지 않으실것을 아주 잘압니다.^^;;
반면에 헌금을 준비했을 때입니다.
전 십일조가 아닌 이상 언제나 천원짜리입니다.
봉투에 천원짜리를 넣습니다.
헌금 시간이 되면 구별해 놓았던 헌금 봉투를
쏘옥 넣습니다.^^
준비 안했을 때와 같은 마음은 없습니다.
위 동영상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저런 곡을 예배당에서 아이들이 저렇게 잘 차려입고 나와서 까지 불렀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는 교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런 류의 곡은 저런 예배시간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험들기 딱이죠^^;;
헌금을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된다고요?
헌금하지 않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고 또 그스스로가 헌금을 하지 않으면 죄의식이 들도록 세뇌를 시키면서요.
님이 한번 한동안 헌금을 하지 말아보세요.
아마도 맘속으로 큰 죄를 지은 듯 마음이 무거워지고 심히 불편해 질겁니다. 그러다 다시 헌금을 시작하고나면 마음은 뿌듯하여 다시 편안해질겁니다.
이런걸 세뇌라하지 않나요?
[quote]'주님은 돈 없는자 원하지 않죠' 동영상은 그 전에도 한 번 본적이 있는데,
어느정도 의도적으로 편집된 것은 뻔히 보입니다만,
그렇다고 본 뜻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quote]
저도 편집 부분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다행이 goowhan님이 전문을 싫어 주셔서 오해의 소지가 조금 더 줄어든 것 같습니다.
위곡은 CCM(christian contemporary music)으로 분류되는 곡입니다.
미국의 경우 CCM과 Gospel이 확연히 구분되어지지만
우리나라는 애매모호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위곡은 확실히 성가(gospel)로 보기는 어려울 뿐더러 기독교인들도 잘 알지 못하는 곡입니다.
가요의 가사 중에 현 시대의 모습을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곡들이 있듯이 위곡 또한 교회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을 풍자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도 위와 같은 곡을 들으면 재미있게 들으며 웃으면서도 속으론 좀 찔리는 구석이 있는.. 그런 곡이죠
쓸내용이 그렇게 없었는지.. 돈이라는게 아무리 좋은곳에 쓰여도 항상 양면성을 내포하는 것이라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은데 하필이면 노래가사에 돈 운운하는 내용을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불교인지 철학인지에서 말하는 무소유 라는 것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왠지 종교에 대한 모든 분쟁을 씻어줄 개념 같네요. 현실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말중에 하나지만 그래도 종교가 가야될 방향이라면 보다 깨끗한 길을 찾아서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을 믿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믿는 지가 중요한것 같습니다.
대형교회보다 작은시골의 교회가 더 맘에 들고 큰 절보다 이름없는 산속에 있는 암자가 마음에 들며 돈많이 주는 경쟁심 많은 회사보다 돈 적게 주지만 편안한 회사가 맘에 드는 이치가 무엇일런지요? 뭔가가 풍족해질때 사람은 욕심이 생긴다고 합니다. 지금의 종교의 모습이 딱 그런것 같습니다.
[quote]그 책은 기독인이든 비 기독인이든 모두 볼 수 있는 책입니다.[/quote]
양쪽 모두 볼 수 있는 책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비기독교인의 공감을 얻기는 힘든 책입니다. 책의 전제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음을 믿느냐"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논리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비논리의 점철이기 때문입니다.
[quote]그리고 기독인들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quote]
당연한 얘기입니다. 그러나 기독인들로 기독교를 바라보는 것도 세상의 이치입니다.
저도 위에 보여주신 동영상과 관련 비판에 대해서 많이 공감합니다...
하지만 도아님께서 정말로 제대로 기독교를 비판하려면 기독교에 대해서 더더욱 연구하시고 비판하시는 것이 좋을 것같습니다.
현재 많이 타락한 것은 확실히 맞습니다. 그런 면에서 당연히 비판해야 합니다. 교회가 장사하는 것도 많이 보았구요...
하지만 도아님께서 마음을 열어보시고 제대로 한번 기독교의 문제를 파헤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도아님은 완전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옛날 상황과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합니다.
제가 추천해주신 책을 정말로 한번 오픈된 마인드로 읽으시고 다시 비판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에서 리차드 도킨스에 관해서도 언급됩니다.
[quote]하지만 도아님께서 마음을 열어보시고 제대로 한번 기독교의 문제를 파헤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도아님은 완전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듭니다...[/quote]
지극히 중립적이라는 의견이 더 많습니다. 다른 글과 댓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부분이 바로 이런 점입니다. 김용옥같은 석학도 기독교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빈수레라고 하는 사람들이 기독교도입니다. 하물며 제가 아무리 열린 마음으로 기독교를 대한다고 해도 그 기독교도가 바뀌지 않는한 바뀔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즉, 호글님 부터 바뀌는 것이 순서인 것 같습니다.
[quote]그리고 옛날 상황과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합니다.[/quote]
어제는 일요일에는 시험을 치루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의 입법 예고가 있었습니다. 기독교도의 공통적 사고 중 하나나는 교회를 벗어나면 5명 중 4명이 기독교도가 아니라는 점을 모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이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뒤 지금까지 있어온 일입니다.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점은 기독교는 이제는 누구도 어찌하지 못하는 권력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도는 여전이 눈감고 귀닫고 오로지 입으로만 떠듭니다.
[quote]제가 추천해주신 책을 정말로 한번 오픈된 마인드로 읽으시고 다시 비판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에서 리차드 도킨스에 관해서도 언급됩니다.[/quote]
우선 순위에 밀려 있지만 한쪽의 사고로 쓰여진 책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윗 글에 설명했듯 이 책은 지극히 기독교적인 책입니다.
신에 대한 갈등은 계속 커져만 갔고 20대에 들어 오면서 신을 버렸던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신을 떠난다는 것은 커다란 공포를 가져 오며 마치 허허벌판에 혼자 뚝 떨어진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나의 생명은 유한적이고 영혼이 없다면 너무 나의 삶 자체가 허망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제가 확신속에서 신을 떠날 수 있게 만들어 준 책이
김용옥의 "절차탁마대기만성(1987년)"이란 책과 "여자란 무엇인가" 이 두권이었습니다.
신을 제 관념속에서 지워버린게 벌써 20여년 가까이 흘렀지만 하나님을 믿을때 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자유롭고 편안 합니다. 오히려 과학적 세계관을 갖도록 저를 만들어 줬습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의학이 모든 질병을 극복하고 인간의 수명이 반 영구적인 그때가 온다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라지겠지요. 결국 종교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발버둥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quote]신앙생활을 하다 신을 떠난다는 것은 커다란 공포를 가져 오며 마치 허허벌판에 혼자 뚝 떨어진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나의 생명은 유한적이고 영혼이 없다면 너무 나의 삶 자체가 허망하기 때문이지요.[/quote]
이부분은 극히 공감합니다. 저때문에 교회를 버린 사람도 많지만 의외로 이런 고민은 한번도 해보지 않고 신앙을 버리라고 한 것 같군요.
[quote]사실 나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교졸업쯤 까지 교회에 다녔는 데 어린시절 주일학교에서 헌금낸 결과를 막대그림표로 표시하여 벽에 붙여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하는 것에 대해 좋지않은 느낌을 주며 어린마음에 상처를 주던 일이 생각나서 한줄 적어 봅니다[/quote]
연배가 어떻게 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경쟁적으로 헌금할 수 있도록...
사실 이때부터 교회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동네 아주머니가 그러시더군요.
안녕하세요. 링크 타고 왔습니다.^^
저도 리처드 도킨스 님의 '만들어진 신' 재미있게 읽고 독후감 올렸습니다.
그런데 저 헌금이라는 문제는, 저 노래와는 상관없이 문제가 있습니다.
예전에 모 유명인이 어릴 적에 성당에서 헌금 내라고 강요하는 것에 상처 받아서 성당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그리고 사람도 아닌 신(하느님)도 돈을 원한다는 사실은 불합리의 극치입니다.
말로야 정성이다 그러지만요.
하지만 그 정성이 왜 그냥 마음만으로 표현될 수는 없는 걸까요?
그냥 뇌물 바치고 제물 바쳐서 저 잘 봐주십시오~~~ 이런 뜻 밖에 없는 겁니다.
그리고 신을 빙자해서 종교인들은 그 뇌물을 그냥 받아먹지요.
신에게 바치는 돈을 왜 자기들이 맘대로 먹고 씁니까? 종교인이 무슨 신입니까?
그냥 솔직하게 "나 좀 먹고 살며 여러분에게 좋은 말씀 들려주도록 보태주세요"라고 말하면 안됩니까?
이런 걸 호랑이의 위세를 비는 여우(호가호위)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종교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면서도 세금도 안 냅니다.
일부 내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다수 종교인들은 세금도 면제입니다.
참 불합리한 현실이지요. 종교인들이 무슨 특권층이라고요.
세계 최대 초대형 교회들의 규모를 보세요. 세금 안 내는 게 말이나 됩니까.
세금 떼어먹는 사람들 쫓아다니는 국세청 직원들의 노력이 무색할 지경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텔레비전 9시 뉴스에서도 그 문제 방송하더군요.
정부는 말로는 개혁 개혁 하지만 이런 문제는 개혁 안 하고 지극히 보수적이지요.
저도 과거에 종교 관련 서적들, 기독교 관련 서적도 제법 읽어봤지만요,
그런 책들은 요점은 항상 똑같습니다.
"그냥 무조건 믿어라"
이런 건 정말 무가치한 주장입니다.
사기꾼도 자기 무작정 믿으라고 그럽니다. 그런다고 사기꾼들 말대로 무작정 믿으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에서 가장 전지전능한 신(하느님)이란 존재가 증거도 제시 안 하고 무작정 믿으라는 궤변을 늘어놓을 리가 있겠습니까?
기독교 서적들의 그 맹신주의에다, 심지어 뻔뻔스러움까지 접하니,
정말 무가치함과 비인간성에 실망감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어느 유명한 기독교 서적에서는 마녀사냥까지 정당화하더군요.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도들의 난동으로 모는 논리와 뭐가 다를까요?
해도해도 너무 한 거지요.
종교 교리에 푹 빠지면 인간의 양심까지 마비되나 봅니다.
원래 그게 인간의 본성이기는 하지만요.
자기 패거리의 잘못은 어떻게든 정당화하고 덮어주려는 안 좋은 습성 말입니다.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되는 거지요.
그래서 종교 교리를 믿게 되면 인간은 그 교리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아뭏든 도킨스 님의 용감한 발언 덕분에 무신론자들이 더욱 용기를 얻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도 이제부터는 당당한 무신론자가 되려고 해요.
전에는 저도 사회의 지나친 맹목적 종교 존중에 세뇌되어 있었거든요.
살다 보니 이젠 아니다 싶더군요.
아, 그리고 여기 블로그 처음 왔을 때,
꼭대기에 기독교 관련 광고들이 그득해서 여기가 기독교 믿는 분 블로그인가 아주 잠깐 착각을 하기도 했어요. ^^;
애드센스의 기능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아뭏든 조금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예. 종교이전에 사람인데 개신교도는 사람이전에 종교로 알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quote]아, 그리고 여기 블로그 처음 왔을 때,
꼭대기에 기독교 관련 광고들이 그득해서 여기가 기독교 믿는 분 블로그인가 아주 잠깐 착각을 하기도 했어요. ^^;
애드센스의 기능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아뭏든 조금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quote]
비슷한 얘기를 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또 어떤 분은 이런 점을 이용해서 트래픽을 가져온 경우도 있고요.
무어라고 해도 다 변명으로만 들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조금 크다 싶은 교회들에는 헌금 봉투가 십여개가 넘습니다. 봉투 이름들도 우리 일상사에 있을 법한, 아니 다반사인 이사, 입학, 입사, 승진 등등 그런일들마다 감사헌금을 독려하는 봉투들이죠. 도대체가 교회들은 왜 그렇게 돈을 밝히죠? 도 헌금그래프는 무엇입니까? 노골적이다 못해 좀 야만스럽고 뻔번하지 않나요? 사실 개신기독교에대한 목불인견은 헌금 뿐만이 아닙니다만 얘기가 그족으로 흐르니...도야님의 글올린 취지를 물타기 하는거 같아 지적드립니다만, 이 글의 요지는 늘상 주린 걸구귀신처럼 신도들의 주머니에 혈안이 돼 있는 그런 양두구육의 종자들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의 근본모군에 대한 각성의 필요에 대한 점두라고 보시면 됩니다. 도야님께 주제넘었군요 ^^
도킨스 책 "만들어진 신" 지금 거의 다 읽어가는데 처음 기대했던 뭔가에 미치지 못하네요. 다윈이론을 신과 종교에 적용하여 논증하려는 시도인것 같긴 한데... 저자가 생물학자라 그런지 신과 종교을 생물학이라는 잣대를 통해서만 해석하려는데 좀 거북하게 느껴지네요.
번역 또한 잘 된것 같지가 않습니다. 번역자가 내용을 완전히 소화를 못한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번역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읽는 내내 흐릿한 창 너머로 풍경을 보는 듯한 갑갑함이 느껴집니다. 더욱 더 안 좋은 것은 한글 문장마저 문법에 안맞게 써놔서 뭔말인지 모르게 하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닙니다.
전에 도올책에서 번역에 대한 도올의 견해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만 하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