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에 있어서는 좌가 낮게 취급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찬성의 경우도 좌찬성이 우찬성보다 높은 벼슬이었고 승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당시 인물들의 공에 따른 승진의 추이를 보면 확인할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조정회의나 상참의 시에도 임금이 보기에 좌측에 앉는 자들이 품계가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도아님이 병권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좌의정은 병조뿐만 아니라 인사행정 및 공훈을 담당하는 이조의 최종실무권까지 행사하였으니 실질적 권한이 없는 영의정을 넘어서는 조정내 최고권력자라 할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삶의 편의를 위해 오른손잡이를 우대하고 장려한 경향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것이 모든 곳에 일괄적으로 통용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김만중의 구운몽에도 '남자인 내가 왼쪽으로 걸어야한다'는 구문이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quote]벼슬에 있어서는 좌가 낮게 취급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찬성의 경우도 좌찬성이 우찬성보다 높은 벼슬이었고 승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당시 인물들의 공에 따른 승진의 추이를 보면 확인할 수 있으실 겁니다.[/quote]
실권과 품계는 차이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조선조는 무보다는 문을 숭상했으며, 좌의정에 병권이 할당되어 있습니다. 이 것은 좌의정의 품계가 높다는 것이 아니라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높다의 의미가 실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quote]예로부터 삶의 편의를 위해 오른손잡이를 우대하고 장려한 경향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것이 모든 곳에 일괄적으로 통용되었던 것은 아닙니다.[/quote]
항상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존우 사상이 지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quote]김만중의 구운몽에도 '남자인 내가 왼쪽으로 걸어야한다'는 구문이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quote]
화장실에서 밑 닦을 때 오른손을 사용했다고 파혼한 예는 어떨까요?
논점이 흐려진 것 같은데, 이 대화의 발단은 도아님의 '좌의정(무신) 보다는 우의정(문신)의 품계가 높다'라는 발언입니다.
일단 두 직책의 형식적 품계는 같다는 점은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위 제 글을 보시고도 진정 우의정이 좌의정보다 높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전 왼손이 오른손보다 우위에 있었다든지, 조선시대에 존우사상이 없었다고 주장한 게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존우사상과 행정조직의 좌우는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좌의정이 더 높은 직급으로 인정됐었고 승진의 방향 - 이 부분은 위에도 적었듯이 그 시절 인물들의 인사 이동 사항을 보면 그대로 드러납니다 - 도 그랬다는 걸 말씀드렸을 뿐인데, 당황스럽게도 감정적으로 나오시는군요.
제 글을 아무리 다시 읽어봐도 그런 오해를 살 만한 내용도 공격적인 발언도 없는데 제가 모자란 탓인 것 같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quote]논점이 흐려진 것 같은데, 이 대화의 발단은 도아님의 '좌의정(무신) 보다는 우의정(문신)의 품계가 높다'라는 발언입니다.[/quote]
저 역시 비슷합니다. 아울러 이 발언이 실제 품계가 높다는 뜻이 아니라 존우 사상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는 것은 아실 겁니다. 정 1품과 종 1품의 품계는 형식적으로는 같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정1품이 종1품보다 높계 인식합니다.
[quote]하지만 위 제 글을 보시고도 진정 우의정이 좌의정보다 높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quote]
위에서도 계속 얘기했지만 병권을 쥐고 있는 쪽이 실권을 장악한 것은 사실입니다.
[quote]굳이 말하자면 존우사상과 행정조직의 좌우는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quote]
저 역시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존우 사상이 지배했기 때문에 행정 조직을 바라보는 관점도 존우 사상에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원 품계는 같지만 오른쪽을 높계 인식했다는 뜻입니다.
[quote]당황스럽게도 감정적으로 나오시는군요.[/quote]
어떤 부분이 감정적이라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제가 보기에는
[quote]하지만 위 제 글을 보시고도 진정 우의정이 좌의정보다 높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quote]
형태의 어투가 감정적인 어투로 보이는데요.
[quote]제 글을 아무리 다시 읽어봐도 그런 오해를 살 만한 내용도 공격적인 발언도 없는데 제가 모자란 탓인 것 같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quote]
저 역시 비슷합니다. 다시 글을 읽어 봤지만 감정적으로 쓴 부분은 없습니다. 어떤 부분이 감정적이라는 것인가요?
그리고 논점이 흐려지는 것은 원치 않기 때문에 이 글을 마지막으로 달도록 하겠습니다. 혹 오해가 있었다면 이자리를 빌어 사과드립니다.
우선 도아님께서 착각을 하셨습니다. 벼슬의 품계는 영좌우의 순서입니다. 영의정이 가장 높고, 다음이 좌의정, 마지막으로 우의정입니다. 좌의정이 병조를 관할한다는 것도 틀립니다. 조선 중후기에는 좌의정은 이조를 관할하고, 우의정이 병조를 관할합니다. 조선 초기에는 영의정이 이조를 우의정이 병조를 관할하고, 좌의정은 영의정을 보좌했습니다. 조선 후기로 가면 영의정이 명예직 비슷하게 바뀌죠. 벼슬 품계에서 좌가 우보다 앞서는 까닭은 존우 사상과는 하등 관련이 없습니다. 이것은 동서양의 차이이지 존우 사상과는 관련이 없다는 말입니다. 서양은 오른쪽을 모든 사물의 기준으로 삼았고, 동양은 중앙과 왼쪽을 사물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양식 제도에서는 오른쪽을 좀 더 높게 여기고(신약 성경에 보면,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오른쪽)에 앉아 계시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동양식 제도에서는 왼쪽을 좀 더 높게 여깁니다. 사실 3정승은 그 품계가 같은데, 영상, 좌상, 우상의 순서를 따지게 되는 것도 그런 까닭이죠.
다시 정리하면, 도아님이 하신 착각은, (1) 좌의정이 병조를 담당한다고 하신 점, (2) 우의정이 좌우정보다 좀 더 높다고 생각하신 점입니다. 또한 의정부로 통칭되는 3정승이 병조와 이조만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도 함께 봅니다.
읽다 보니 또 착각을 하셨네요.
3정승은 모두 정1품입니다. 종1품은 정승이 아닙니다. 정1품이 정승이고, 종1품은 정승의 보좌관에 해당하는 찬성입니다. 그러니까 의정부의 장관은 정승이고, 차관은 찬성이며, 경칭은 합하(정1품)와 대감(정2품 이상)입니다. 6조의 장관은 판서이고, 차관은 참판이며, 경칭은 대감과 영감(정3품 이상)입니다. 정승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있으며, 찬성은 좌찬성과 우찬성이 있습니다. 찬성도 다른 직제와 마찬가지로 좌찬성을 우찬성보다 높게 여깁니다.
이번에 발견한 착각은 (1) 정1품과 종1품이 형식상 같지 않습니다. 분명히 정1품이 종1품보다 높습니다. (2) 정승은 정1품뿐입니다. 영의정만이 아니라 모든 정승은 정1품입니다.
모든 정승은 무관이 임명된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이런 상황에서 좌의정이니 우의정이니 따지는 일은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조선은 "문치주의" 국가입니다. 따라서 병조의 인사권을 가진 영의정이 3정승 가운데 마지막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다만 6조의 경우에는 도아님 말씀대로 병조가 실권을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만, 이 경우도 역시 무관이 임명되는 일이 후대로 갈수록 줄어듭니다. 조선 후기는 고려 전기의 복사판이 되고 말죠.
좌익과 우익도 동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좌익과 우익은, 프랑스 혁명 때에 로베스 피에르의 급진파를 지지한 세력이 왼쪽에 모이고, 급진파가 아닌 사람이 급진파의 오른쪽에 모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한 당시에 "민주주의자"는, 심지어 미국에서까지도, 급진파에 속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