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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로 뽑은 아주머니는 집안 문제로 그만 두었고, 두번째로 뽑은 아주머니는 술마시고 툭하면 결근을 해서 그만 두었습니다. 세번째로 뽑은 아가씨는 이틀을 나온 뒤 힘들다고 그만 두었습니다. 사실 남들은 주 5일을 근무하는데 서점은 기본이 주 6일을 근무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6시면 퇴근이지만 매장은 일주일에 세번 정도는 10시까지 근무해야 합니다.
주 6일을 근무하는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을 쉴 수 있지만 매장은 토요일 또는 일요일만 쉴 수 있습니다. 한달에 한번이라도 일요일에 쉬기 위해 서점들과 매월 셋째주 일요일은 문을 열지 않기로 했지만 지키는 서점은 글터 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서점이 동네 서점틀을 벗어나면서 토요일, 일요일 매출이 평일 매출 보다 많아 졌기 때문에 이제는 쉬려고 해도 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매장 직원을 계속 뽑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얼마 전 다시 모집 공고를 냈고 그래서 오신 분이 북한에서 오신 분이었습니다. 예전에 이웅평씨가 넘어 올 때에는 정착금이 상당히 많았지만 요즘은 얼마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덕에 남편 되시는 분은 다른 곳에서 일하시고 2주에 한번씩 충주에 오신다고 합니다. 아울러 아이들은 말도 안되고 적응을 못해서 시부모님과 함께 중국에 가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한의학(동의학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을 전공했지만 낯설고 물설은 남한에서는 정말 살기 힘들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침술 자격증도 따고 맛사지 자격증도 땃지만 취직할 때가 없어서 서점의 모집 공고를 보고 오셨다고 합니다다.
아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 받을 수도 없는 사회에서 정착한다는 것, 그 자체가 상당히 힘듭니다(해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매장 직원으로 뽑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와 말하는 방법, 사용하는 단어가 틀리다 보니 소통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그전에 뽑았던 분들 보다는 오래 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열심히 하십니다다. 모르는 것은 물어보고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저에게 북한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에 좋습니다.
꽤 오래 전 어머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 생신때 가서 하루 종일 일하시고 술한잔 드시지 못하시던. 불현듯 예전일이 생각났습니다. 이웅평씨가 귀순한 몇 년 뒤 초청 강사로 왔을 때 들은 얘기입니다. 다른 얘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였다. 70년대 우리 정서를 가진 분들이니 사기를 당하기도 쉽고 정착도 힘듭니다. 주변에 이런 분들을 보면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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