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탑 공원

중앙탑 공원은 탄금대 공원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 탄금교를 지나 우회전 한 뒤 한 5분정도 가면 나온다. 중앙탑 공원도 규모는 꽤 크지만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따라서 충주의 다른 공원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한산하다. 물론 여름에는 지금보다는 많다. 충주시 인구가 20만에 불과하고 이렇게 가볼 수 있는 공원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한 여름에도 사람이 넘처나는 때는 많지 않다. 공원의 이름은 공원 가운데에 있는 중앙탑에서 생겼다. 중앙탑은 8~9세기 경에 세워진 탑으로 통일 신라 전역 중 가장 가운데에 있는 탑이었기 때문에 중앙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중앙탑 공원

중앙탑 공원은 탄금대 공원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 탄금교를 지나 우회전 한 뒤 한 5분정도 가면 나온다. 중앙탑 공원도 규모는 꽤 크지만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따라서 충주의 다른 공원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한산하다. 물론 여름에는 지금보다는 많다. 충주시 인구가 20만에 불과하고 이렇게 가볼 수 있는 공원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한 여름에도 사람이 넘처나는 때는 많지 않다. 공원의 이름은 공원 가운데에 있는 중앙탑에서 생겼다. 중앙탑은 8~9세기 경에 세워진 탑으로 통일 신라 전역 중 가장 가운데에 있는 탑이었기 때문에 중앙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중앙탑 공원은 충주 박물관 1관, 2관, 술 박물관, 각종 조형물, 자연 학습장, 공연장, 운동장들이 모두 있는 종합 공원으로 방문했을 땐 여기 저기 공사 중이었다. 중앙탑 공원에 박물관이 있는지는 몰랐지만 주차를 하고 내려보니 바로 앞에 석인들이 모여 있었다. 공원에 뜬금없이 서있는 석인을 보고 생각해 보니 수몰 지구에 있던 유물과 문화재를 중앙탑에 옮겨 전시하고 있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것 같았다.

탑과 석인들

탑과 상당히 많은 석인들이 모여있다. 수몰지구에서 가져온 듯 보였다. 요즘도 무덤을 만들 때 세우는 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힘있던 사람들의 무덤 옆에서는 저런 석인들이 서있던 것을 종종 봤었다.

박물관 1관

가장 먼저 가본 곳은 충주 박물관 1관. 1관은 민속실과 역사실이 있었다. 민속실에는 주로 사람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고 역사실에는 중원 고구려비와 같은 역사적 유물의 모조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역사적인 식견이 있다면 역사실에서도 아이들에게 해줄 말이 많았겠지만 역사에 관심을 가진 공학도 정도라 설명해줄 말이 별로 없었다. 안내 표지도 있지만 이런 안내 표지보다는 각 실에 전시된 유물을 설명한 책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륵리사지

미륵리사지 모형 역사실을 돌아보니 상당히 큰 축소 모형이 있었다. 확인해 보니 미륵리사지. 처음에는 수몰지구에 있던 것을 모형으로 복원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상모면 미륵리에 있는 중원 미륵 대원의 옛터라고 한다.

역사실 보다는 민속실이 볼 것이 더 많았다. 정확히는 볼것이 더 많은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설명해 줄 것들이 많았다. 예전에 사용하던 벼루, 연적, 책을 찍을 때 사용된 목판, 오래된 서적, 천문도 등 흥미를 자극하는 물건들이 상당히 많았다. 아울러 내가 어렸을 때 사용해본 물건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놋그릇

이런 놋그릇을 사용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이런 놋그릇을 많이 사용했다. 무게가 상당히 무겁고 튼튼했던 기억이 있다.

충무공 이수일 영정

처음에는 충무공 이순신을 잘못 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이었다.

지략의 장군 이수일
자는 계순이며, 호는 은암이고 본관은 경주다. 선조16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처음에는 훈련원에 예속되었다. 선조23년에 선전관이 되었다가 이듬해 선조24년에 장기현감이 되었다. 선조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수일은 동지를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적을 맞이하여 크게 싸웠으니 거꾸러뜨린 적병의 수가 헤아릴 수 없었다.

이외에도 꽃상여, 가마, 베틀 등 상당히 많은 민속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꽃상여가 있는 지하에는 예전 대장간의 모습을 복원한 모형, 디딜 방아 등 아이들에게 유용한 자료가 많았다.

예전의 대장간

열심히 일하지 않고 농땡이를 부리고 있는 것 같지만 밀납 인형이라 나름대로 사실감이 있었다. 풀무질을 하는 사람은 앉아 있는 것 보다 풀무를 힘차게 밀고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박물관 2관

2관은 청동기, 석기시대 부터 발굴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석기 시대의 돌칼, 청동기 시대의 토기, 삼국 시대의 술잔, 고려 시대의 청자, 조선 시대의 백자와 대포등. 역시 역사적인 지식이 많지 않아 눈으로 구경하는 것으로 2관의 관람을 마무리했다. 아울러 축구를 하고 싶어하는 우영이 때문에 더 이상 관람하기도 힘들었다.

2관 입구의 수석. 2관 입구 양쪽에는 상당히 멋있는 수석이 놓여있다. 뱀의 머리 같은 이 돌은 반대쪽에서 보면 도마뱀 같기도 했다.

중앙탑

중앙탑

박물관을 나와 축구를 하려고 공원 가운데로 가니 떡 하니 나타나는 중앙탑. 다른 탑에 비해 조금 날렵한 인상을 주었다. 나중에 안내 표지를 보니 다른 탑에 비해 날렵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하늘로 솟구치는 인상을 준다고 한다.

중앙탑에는 잔디가 자란 넓은 공간이 많다. 여기서 축구를 하면 꼭 축구장에서 축구하는 기분이라 우영이와 함께 넓은 공간을 찾았다. 그런데 축구장으로 사용할 공간보다 먼저 찾은 것은 포장마차. 오전 11시에 출발했고 배가 슬슬 고프기 시작하는 시점이라 여기서 먼저 간단히 요기하기로 했다. 우영이는 컵라면을 먹고, 우엉맘과 나는 잔치 국수를 시켰다. 잔치 국수가 나오는 동안 꼬불이 어묵을 7개나 먹었다.

간단히 요기한 뒤 우엉맘과 우영이가 한편, 나와 다예가 한편이 되서 잔디밭에서 축구를 했다. 규칙은 간단하다. 생수병을 공으로 차서 쓰러트리면 1점. 우영이와 축구를 하다 보니 의외로 부상이 많다. 우엄맘이 구두로 밟고, 우영이가 정강이 뼈를 걷어 차서 무척 아팠다. 이렇게 축구를 하고 있는데 명찰을 단 아주머니께서 오셨다.

아주머니: 여기서 축구하시면 안되는데요?
도아: (민망해 하며) 아. 그래요.
아주머니: 예.
도아: (잔디밭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예야.
아주머니: (민망해 하는 것을 아는 듯) 가족이 모두 오셨나봐요.
도아: (더 민망해서) 예.

기타 시설

중앙탑 공원은 작은 몇개의 길을 제외하고는 모두 잔디밭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잔디를 밟고 다니고 잔디를 밟지 말라는 표시도 보지 못해서 밟아도 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하루 종일 축구를 하고 싶은 우영이가 투덜 거리자 아주머니는 운동장이 있지만 지금은 공사중이라면 친철하게 알려 주셨다. 예전에 술 박물관 근체에 운동장이 있었던 것이 기억나 술 박물관으로 향했다.

조형물

중앙탑 공원에는 이런 조형물이 상당히 많다. 중앙탑 공원 입구에는 이런 조형물이 어디에 배치되어 있는지와 작가가 누군지에 대한 안내도가 있다.

술박물관으로 가다가 생각해보니 예전에 중앙탑에 와서 백숙을 먹었던 생각이 났다. 이미 간단히 요기를 한 상태라 다시 백숙을 먹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찾아 봤다. 역시 중앙탑 공원 가운데 초가집이 있고 초가집 가든(?)이라는 작은 식당이 있었다.

초가집 가든

일반 관광지에 보는 가건물 보다 훨씬 운치가 있다. 그러나 이 것은 내가 초가집 부분만 찍었기 때문이고 실제 식당으로 사용되는 뒷편은 보기 좋지 않은 가건물이었다.

술 박물관

전세계의 각종 술과 술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입장료는 5000원으로 다소 비싸다. 매형과 함께 가볼 생각으로 가 보지 않았다.

봄소식

중앙탑 공원을 돌다보니 웬 꽃이 보였다. 확인해 보니 진달래꽃. 역시 꽃은 봄의 전령인 것 같았다.

청주로

중앙탑 공원을 나와 청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가만히 있지 못하는 우영이는 멀리 가는 것을 싫어한다. 청주를 간다고 하니 오래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지 집으로 가자고 졸랐다. "아이를 이기는 부모없다"고 결국 우영이와 황사 때문에 다시 집으로 향했다. 주자창에 차를 세우고

도아: 우영이 깨워
우엉맘: 다 자는데
도아: 다 자니까 깨워야지
우엉맘: (못마땅한 표정으로) 우영아!!!
도아: (다 자는데라는 말을 이제야 이해하고) 다 자니까 청주로 가자고?
우엉맘: 응

그래서 다시 차를 꺼내 청주로 향했다[1]. 물론 눈치를 챈 우영이가 다시 깨서 칭얼 거렸지만 "청주로 가지 않는다"는 말만 하고 청주로 향했다. 충주역을 지나 달천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한 뒤 주덕 오거리에서 좌회전을 해서 청주로 가는 36번 국도를 탔다. 청주의 규모를 생각하면 충주와 직선 도로가 있을 법도 한데 아직까지는 충주와 청주의 직선 도로가 없어서 시간은 좀 걸리는 편이었다.

잠이 깬 우영이는 계속 재미있게 놀아달라고 졸라서 자동차 번호판으로 땡잡기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우영이가 계속 졌다. 결국 땡잡기도 재미가 없어진 우영이는 다예와 놀기 시작했고 우리 부부는 편안히 청주에 갈 수 있었다. 114로 전화해서 청주에 있는 낙지 한마리 수제비[2]의 전화 번호를 물어보니 충주에는 하나도 없는 낙지 한마리 수제비가 청주에는 세곳(홈페이지에는 네곳)이나 있다고 한다. 결국 아무 곳이나 알려달라고 한 뒤 번호를 받아 적었다.

청주의 지리를 모르기 때문에 지도로 확인하니 36번 국도에서 청주로 들어가는 길목에 가경동이 있었다. "가경동에도 낙지 한마리 수제비가 있다"는 것을 114에 문의하면서 들었기 때문에 가경동으로 가기로 하고 청주에 들어섰다. 들어서자 마자 나오는 커다란 건물. 확인해 보니 '홈 플러스'였다. 가경동에는 버스 터미널이 있기 때문에 찾기 쉬울 줄 알고 버스 터미널을 향해 가다 보니 조금 이상했다. 내가 지도를 잘못봐서 생긴 착각이었다. 충주에서 오다보면 가경동이 아니라 상당구가 먼저 나오며 36번 국도 끝이 가경동이었다.

그러나 버스 터미널이 찾기 쉬울 것 같아 가경동으로 가기로 하고 도로 표지판만 보고 버스 터미널을 찾았다. 우엉맘이 청주에서 학교를 다녔고 우영맘의 외가도 모두 청주에 모여있다. 자주는 아니라고 해도 꽤 많이 방문한 셈인데 예전의 청주에 비해 규모가 정말 커졌다. 충주에는 구가 없지만 청주에는 구가 두개나 있었다. 아울러 낙지 한마리 수제비가 있는 가경동은 정말 컷다.

낙지 한마리 수제비

간신히 버스 터미널을 찾았지만 문제는 가경동의 낙지 한마리 수제비의 위치를 모른다는 점. 가경동 낙지 한마리 수제비에 전화를 했다.

도아: 낙지 한마리 수제비죠?
낙지: 예.
도아: 버스 터미널에서 찾아 가려면 어떻게 하죠?
낙지: 예. 버스 터미널에서 저희 쪽으로 계속 오면되요.
도아: (낙지 발이 여덟개인데 그중 어느 방향)
낙지: (상황을 이해 한 듯) 가경동 홈플러스 아세요.
도아: (지도에서 본 기억이 있어서) 예
낙지: 홈 플러스 건너편 이거든요.

지도에서 확인해보니 홈 플러스는 버스 터미널에서 계속 내려가면 됐다[3]. 결국 홈 플러스에 주차하고 낙지 한마리 수제비에 앉았다. 서울이나 인천이라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집이지만 충주에는 없는 덕에 이걸 먹으러 청주까지 와야 했다. 아무튼 우엉맘이 좋아하는 해물찜과 내가 좋아하는 시원 소주를 시켰다.

가족 단위의 방문이 많은지 아이들 것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내왔다. 기본 차림이 나오고 수제비가 나왔다. 국물을 마셔보니 매콤, 칼칼하면서 시원했다. 따라서 아이들이 먹기에는 조금 매울 것 같았지만 의외로 우영이는 물을 마셔가며 수제비를 먹고 있었다. 다예는 수제비를 먹기 힘들 것으로 생각했는지 김을 잘게 짤라 비벼 먹을 수 있는 그릇을 하나 더 내왔다.

해물찜

먹기 전에 한장 찍었다. 해물찜은 여기 보다는 선능역 근처의 동태찜을 하는 곳(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음)이 더 맛있다. 선릉역 해물찜은 콩나물이 별로 없고 해물이 정말 많았다. 아울러 해물이 모두 싱싱하고 양념도 맛있기 때문에 처가에 가면 자주 가는 곳이다. 단 가격이 비싸다. 작은 것이 5만원. 낙지 한마리 해물찜도 맛은 괜찮다. 해물도 비교적 많았고, 함께 나온 동치미가 워낙 시원하기 때문에 해물찜과 동치를를 곁들이면 딱이었다. 가격은 작은 것이 3'3000원.

우영이와 다예는 밥을 먹고 식당 여기 저기를 돌아 다녔다. 해물찜은 작은 것을 시켰지만 우리 내외가 먹기에는 조금 많았다. 결국 소주 두병에 해물찜만 먹었다. 밥을 비벼먹었으면 했지만 이미 해물로 배가 찬 상태라 더 이상 먹기 힘들었다. '낙지 한마리 수제비'의 해물찜은 콩나물과 해물이 적당히 섞여있었다. 대치동의 해물찜처럼 해물로만 만든 해물찜은 아니지만 달팽이를 제외하고 모두 먹을 정도로 맛은 괜찮았다. 아울러 손님이 많지 않아서 인지 접대도 친절했다.

모텔로

부른 배도 식힐 겸 주변을 잠깐 거닐었다. 수퍼에서 우영이가 원하는 팬돌이도 사주고 다시 차를 타고 출발하려고 하니 6시 40분. 청주는 우엉맘과의 추억이 있는 곳이라 바로 출발하기 조금 아쉬었다. 그래서

도아: 오늘 여기서 자고 갈까?
우엉맘: 정말. 그래도 돼?
도아: 안될꺼야 뭐 있어. 여기서 하룻밤 자고 내일 일찍 출발해도 되지.
우엉맘: 그러자.

순간적인 일탈이었지만 우엉맘도, 우영이도, 다예도 이런 일탈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이트장을 가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노땅이라고 받아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우엉맘 때문에 포기했다. 청주에는 우엉맘의 친척이 있지만 친척집은 불편할 것 같아서 버스 터미날 주변의 모텔을 잡았다. 모텔은 처음와 본 우영이는 마냥 신기한 모양이었다. 커다란 TV, 냉장고, 펜션과 비슷한 내부 구조를 보고

우영: 아빠. 이 모텔 되게 좋다.
우영: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바로 옆 모텔은 숙박비가 3'5000원 이었지만 5000원 비싼 이집을 택한 이유는 시설이 더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짐을 부린 뒤 주변 편의점으로 가서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샀다. 그런데 명색이 편의점인데 없는 게 너무 많았다. 일단 RED가 없었다. 결국 카스 Q팩과 우엉맘이 먹을 카프리, 아이들의 과자, 라면을 먹을 때 쓸 김치를 산 뒤 다시 모텔로 왔다.

차를 타고 다니다 배가 고프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요량으로 항상 차 트렁크에는 라면, 코펠과 버너들 두고다닌다. 이 녀석들로 모텔에서 라면을 끓였다. 코펠이 작기 때문에 라면 세개는 넘칠 가능성이 있어서 라면 두개만 끓였다. 버너가 생각보다 화력이 좋았다. 종이 컵에 라면을 담아 먹은 뒤 우엉맘과 얘기를 하며 맥주를 한잔 한 뒤 잠을 청했다.

그리고 오늘 어제 일찍 잔 덕에 6시에 눈을 떴다. 화장실에 갔다 온 뒤 우엉맘을 깨우고 다예와 우영이의 옷을 입힌 뒤 충주로 출발했다. 갈 때는 청주 시내를 통과해서 왔지만 올 때는 청주 제2순환로를 탄 뒤 다시 36번 국도로 갈아탔다. 이른 시간이고 시내를 통과하지 않아서 인지 충주에 도착하니 7시 반. 서점 근처의 해장국 집에서 선지 해장국을 먹고 사무실로 바로 GG했다.

추가 사진

석인과 다예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다예가 먼저 석인과 사진을 찍었다. 다예는 옷마다 입는 방법이 다르다. 얇은 봄 잠바는 잠그지 않고 반쯤 어깨에 걸친 상태로 입는다.

석인과 한장

황사에 바람이 불어서 우영이의 표정도 굳어 있다. 다예의 사진을 찍어 주자 셈이 난 우영이도 석인과 포즈를 취했다.

미륵리사지 모형 앞에서 한장

두 녀석 모두 장난이 심해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조금 힘들다. 우영이는 다예를 누르고 다예는 우영이를 밀고. 이번에는 두 녀석 모두 완전히 허리를 꺽은 뒤 자세를 잡았다.

놋그릇 앞에서 한장

그런데 녀석의 표정이 상당히 재미있다.

대나무 밭

내 고향에도 대나무 밭이 많다. 한때는 대나무 밭 한평에 쌀 한가마니가 나올 정도로 대나무 밭은 수익이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천덕꾸러기 신세이다. 아무튼 공원 한 가운데서 대나무 밭을 보니 반가워서 한장 찍었다.

관련 글타래


  1. 여자들은 참 이상하다. 직접 얘기해도 될 것을 꼭 이런식으로 얘기한다. 아마 "쿨잭님의 얘기처럼 배려해 주기를 바라서일까?" 
  2. 인터넷을 찾아 보니 '낙지 한마리 수제비'가 두 군데였다. 낙지 한마리 수제비팔미 낙지 한마리 수제비. 누가 원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이 간곳은 '팔미 낙지 한마리 수제비'였다. 
  3. 청주의 도시 규모를 알 수 있었다. 다른 할인점이 또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형 홈 플러스가 청주 입구와 출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