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액션의 옹박으로 이름을 세계에 알린 토니 자

옹박은 태국 관광객들의 입소문을 통해 국내에 알려졌고 결국 국내에서 개봉까지 한다. 아울러 옹박의 무에타이는 지금까지 본 어떤 무술 보다 강력하고 화려하고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난 태국이라고 하면 무에타이 보다는 에이즈와 납치가 기억난다.

태국, 에이즈와 납치의 나라

난 태국을 가본적이 없다. 따라서 태국에 대한 추억이라고 하면 간접 경험밖에는 없다. 태국에 대한 간접 경험이 아주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들었을 당시의 충격이 워낙 컷기 때문이다. 내 기억속에 남아 있는 태국에이즈납치다. 먼저 에이즈부터 이야기 하겠다.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비트컴퓨터 전문가 과정에 강의를 나갈 때이니 한 6~7년 정도 지난 이야기인 듯 싶다. 에서 수업을 하는데 아무리봐도 한국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수업 자체가 한국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 아니면 듣기 힘든데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다. 당시 수업 중에는 유닉스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들어 있기 때문에

finger [email protected]

과 같은 명명을 이용해서 사용자 정보를 확인하는 방법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동남아 외국인처럼 생긴 이 분은 연습을 할 때 꼭 ac.th 도메인으로 연습하는 것이었다. 첫 수업은 이런 궁금증속에 마무리됐다. 그리고 점심시간.

이 분과 다른 학생들이 찾아 왔다. 따로 점심을 같이 할 사람이 없으면 점심을 같이 먹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궁금한 점도 많고 해서 그러기로 하고 이 분과 함께 점심을 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알게된 것은 귀국 전에는 '태국에서 교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전 귀국했지만 국내에서 따로 먹고 살만한 방법이 없어서 '비트컴퓨터 전문과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에이즈 창궐

태국의 국민소득이 우리나라만 못하지만 태국에서 교수를 하던 분이 국내에 귀국해서 학원 수업을 듣는 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귀국한 사연을 물어봤다. 귀국한 이유는 바로 태국의 에이즈 창궐 때문이라고 한다. 이 당시 듣을 태국의 에이즈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도아: 88년인가 타임즈에서 태국의 에이즈 문제가 심각해서 국제 원조를 하고 있지만 귀족과 정부에서 이 돈을 에이즈를 막는데 쓰지 않고 다른 곳에 쓴다고 하던데 지금도 그런가 보군요?
그분: 아뇨. 안쓸래야 안쓸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은 국제 원조금을 모두 투자하고 있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그분: 여름 방학을 하고 "집에 다녀 오겠습니다."라고 한 학생이 개학해서 보이지 않으면 에이즈로 죽은 것입니다.

그분: 뉴스를 보면 마을 전체가 에이즈로 죽은 곳도 있습니다.
그분: 예전에는 "가족만 믿어라"라고 했는데 요즘은 "가족도 믿지 마라"고 합니다. 에이즈가 워낙 심해서 더 이상 남아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에이즈가 워낙 심해서 자신이 가르친 학생 중에도 에이즈로 죽은 사람도 많고 심한 경우에는 마을이 통채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에이즈의 창궐을 막기 위해 태국에서 성관계는 '믿을 수 있는 가족하고만 하라'고 했지만 요즘은 '가족도 믿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태국의 에이즈는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태국의 에이즈 문제를 처음 접한 것은 88년 타임즈에 난 기사덕분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태국은 엄마가 딸에게 정절을 가르치는 동안 아빠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창녀촌을 간다는 기사였다. 이런 태국의 이중적인 사고 때문에 창녀촌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넘처난다고 한다. 자국의 여자들만으로 채울 수 없기 때문에 어린 소녀를 인근 지역으로 부터 납치하기도 하고 관광객을 납치해서 창녀촌으로 넘기기도 한다고 한다.

몸을 파는 여자들이 많고 남자들이 여자를 사서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당시 태국은 에이즈의 위험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그래서 WHO를 비롯한 각종 국제 단체에서 에이즈 예방을 위해 원조를 하고 있지만 정부와 왕족이 이 자금은 개인적으로 유용하고 있어서 조만간 태국이 에이즈 천국으로 바뀔 것이라는 경고 기사였다. 그리고 딱 10년이 지난 뒤 타임즈의 예측대로 태국은 에이즈 천국으로 바뀌었고 결국 태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던 한국인이 그 에이즈 때문에 귀국하는 일까지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면 그 뒤 태국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태국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역시 간접 경험으로 답할 수 밖에 없다. 현재 태국에 살고 있는 회색코끼리님에 따르면 에이즈 창궐에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의 노력으로 지금은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또 "에이즈 신약이 태국에서 많이 시험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에이즈 증가율은 예전에 비해 현저히 낮나고 하니 어느 정도 에이즈가 잡힌 듯 하다.

납치

두번째 태국에 대한 기억은 납치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태국은 여자에게는 정절을 강요하고 남자에게는 외도를 가르치는 이중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창녀촌에는 외국의 여자들이 많다고 한다. 인근 지역에서 납치해 오는 경우도 있고 관광객을 납치하는 때도 있다고 한다. 당시에는 신혼 여행을 태국으로 가는 사람이 많았다. 태국으로 여행을 갈 때 꼭 듣는 이야기가 '절대 여자를 혼자 두지말라'는 이야기였다.

동생의 선배라고 하는데 태국으로 여행을 갔다고 한다. 태국으로 여행을 가면서 가이드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에 꼭 신부와 함께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쇼핑을 하기 위해 호텔을 나선 뒤 호텔에 두고온 물건이 있어서 신부를 빵집 앞에 잠깐 있으라고 하고 호텔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 사이 신부가 사라졌다고 한다. 관광 가이드를 통해 태국 경찰에 연락하고 한국 영사관에도 연락했지만 찾는 것은 포기하라는 이야기만 듣고 귀국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여부는 나 역시 알 수 없다. 또 내용을 들어보면 아무래도 소설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당시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갈 때 주의해야 하는 상황을 강조하기 위한 상황극을 듣고 누군가 전파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내가 아는 태국옹박무에타이보다는 에이즈납치라는 이름으로 기억된 나라였다.

남은 이야기

태국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준 고마운 분이 바로 회색코끼리님이다. 회색코끼리님은 QAOS.com의 상당히 오래된 회원이다. 2003년 가입했으니 QAOS.com 도메인으로 운영한지 1년 정도 지났을 때 가입한 셈이다. 내가 처음 알았을 때 외국에서 모뎀으로 접속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가 군대에서 의문사했다는 글, QAOS.com의 모임에 나오고 싶었지만 어려서 가지 못했다는 글, 태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군입대를 위해 한국에 입대했다는 글, 카츄사로서의 고민등이 '회색코끼리'님이 올린 글이었다(물론 이외의 글도 많다).

군대가 선택인 사람이 군대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스티브 유를 기억하기 바란다). 그래서 회색코끼리님에 대한 이미지가 좋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난 현재의 모병제 보다는 소수 정예의 용병제로 바꾸는 것이 국가 발전에 더 도움이 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가장 두뇌활동이 활발한 20대 초반을 군대에서 보내는 것보다는 그 두뇌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지 않았다면 지금이 이런 논의를 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이지만 아쉽게도 이런 논의는 더 이상 힘들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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