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가 들면

군기가 들자 또 달라진 점은 바로 술이었다. 군기가 확실히 들어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평상시에는 1차 소주 서너잔이면 떨어지던 녀석이 7차까지 끌고 다니며 술을 마셨다. 따라서 처음에는 말 그대로 알콜 분해 효소가 없어서 술을 못 마시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역시 마시다 보니, 또 군인의 군기가 남아 있다 보니 의외로 많은 술을 마실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 뒤 혼인을 하고 딸 내미 하나를 두고 젊은 나이에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군기로 마신 술

나는 술을 좋아한다. 따라서 술에 얽힌 비화가 많다.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에서 설명한 것처럼 마시는 양도 많고 자주 마시기도 한다. 이런 내 지론은 "술은 마시면 는다"는 것이다. 설사 알콜 분해 효소가 없다는 사람도 마시면 는다.

친구에 대한 추억 II에서 한번 등장한 녀석이다. 젊어서 혼인을 하고 또 그 젊은 만큼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다. 이 녀석은 고등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색마라고 불릴 정도로 다른 무엇보다 여자를 좋아하던 녀석이었다. 따라서 녀석이 가장 잘하는 일은 역시 여자 꽁무니를 졸졸 따라 다니는 일.

이렇다 보니 공부도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또 스스로 알콜 분해 효소가 없다고 할 정도로 술이 약했다. 많이 마셔야 소주 서너잔이 녀석의 주량이었다. 이미 알고 있고 또 억지로 술을 권하지 않는 분위기라 우리와 어울릴 때는 주량 것 멱고 즐겼다. 따라서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던 녀석이 3수 하던 해에 일이 터졌다. 재수는 할 수 있어도 3수를 하면 영장이 나오기 때문에 녀석은 영장을 피할 목적으로 면목동에 있는 서일 전문대(현 서일대)를 다녔다. 어차피 계속 다닐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거의 매일 수업을 빼 먹은 모양이었다. 오죽했으면 개학 첫날만 나오고 그 뒤 계속 나오지 않은 녀석의 동급생이 '땡땡이 황제'이고 개학 첫날만 나가고 과내 모임만 나가는 녀석이 '땡땡이 왕자'로 불렸다.

문제는 다른 과목은 모두 F 학점을 맞아도 되지만 교련은 F를 맞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녀석이 몰랐던 것이다. 당시는 서슬 퍼런 전두환 군사 독재 시절이라 교련을 F를 맞으면 바로 영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교련 교관에게 사정해서 간신히 F를 모면한 뒤 다음 해에 관동대에 입학했다.

학교를 입학했지만 어차피 군대에 가야 하기 때문에 관동대에서의 생활도 서일 전문대에서의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또 서울에 비해 터무니없이 싼 당구비 때문에 학교 보다는 당구장, 술집을 연연한 모양이었다.

군기가 들면

그 뒤 녀석은 영장이 나와 군에 입대했다. 녀석이 입대한 부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수도 경비 사단이었다. 전방도 아니고 후방도 아닌 어정쩡한 부대로 주로 하는 훈련이 시위 진압 훈련이었다고 한다. 분임 토의 시간에도 중대장이 시위대에 발포 명령을 내리면 총을 쏠 것인가 말것인가와 같은 사안이 많았다고 한다.

또 주로 하는 훈련이 한쪽은 진압대, 나머지 한쪽은 시위대가 되서 진압하는 훈련을 주로 했다고 한다. 따라서 녀석이 휴가를 나올 때 보면 꼭 어딘가는 상처가 나있었다. 귀가 절반 정도 찢어진 적도 있었고 머리가 깨져서 휴가를 나온 적도 있었다. 이렇게 휴가 나올 때 보면 녀석은 군기가 확실히 들어 있었다. 항상 말은 "다, 까"로 끊났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알겠지만 "그랬어요"와 같은 말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었다.

또 달라진 점은 바로 술이었다. 군기가 확실히 들어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평상시에는 1차 소주 서너잔이면 떨어지던 녀석이 7차까지 끌고 다니며 술을 마셨다. 따라서 처음에는 말 그대로 알콜 분해 효소가 없어서 술을 못 마시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역시 마시다 보니, 또 군인의 군기가 남아 있다 보니 의외로 많은 술을 마실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 뒤 혼인을 하고 딸 내미 하나를 두고 젊은 나이에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보기에 이 녀석은 알콜 분해 효소가 없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술을 즐겨하지 않는 녀석일 뿐. 그러다 대학원에 다닐 때 정말 알콜 분해 효소가 없는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알콜 분해 효소가 없는 사람이 술을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도 이때 처음 알았다.

충격으로 마신 술

대학원 신입생 환영회 때 일이다. 지도 교수님도 술을 상당히 좋아하시는 편이었다. 따라서 신입생 환영회는 주로 술집에서 열렸다. 당시 신입생은 병화(가명)와 민구(가명)이라는 녀석이었는데 둘다 술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구이는 특히 심했다. 지도 교수님은 체신부(현재는 사라진 정보통신부)에 꽤 오래 공직생활을 하셨었다. 따라서 당시 공무원 특기인 술잔 돌리기에 능하셨다.

그날도 신입생 환영회라서 윗 기수부터 차례로 술잔을 돌리셨다. 민구의 차례가 되자 독한 소주에 겁을 먹은 민구는 잽싸게 받아둔 맥주를 마셔 버렸다. 맥주를 마셨다고 하면 소주를 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민구가 술잔을 받을 차례가 되었다.

민구: 저 지금 마셨는데요?
교수: 응. 그건 음료수고, 술을 마셔야지 술. 자~~~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맥주를 술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시원한 음료수일 뿐. 공연히 수를 쓰다가 안마셔도 될 맥주까지 마시고 소주를 마셨다. 당시 녀석은 맥주 한잔 이상이면 죽는 다고 했었는데 여기에 소주 한잔까지 더해졌다. 어떻게 됐을까? 일단 내가 놀랬다. 얼굴이 새하해지면서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떨었다. 너무 놀라 병화에게 민구를 데리고 먼저 집으로 가도록 시켰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민구는 그날 먹은 것을 모두 토하고 다음날 술병이 났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맹세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원 2년을 같이 보냈다. 나중에 녀석이 졸업할 때 쯤되서 또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녀석의 술이 늘었다는 점이다. 맥주 한잔에 소주 한잔을 마셨다고 사시나무 떨듯 떠는 녀석이 무려 생맥주 500에 소주 세잔을 마셨다.

이렇게 술이 늘은 이유를 녀석에게 물어 봤다. 녀석은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공부에는 큰 뜻이 없었다. 따라서 공부도 못하는 편이었다. 병역특례를 받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병역특례 업체에서 병역을 마쳤다. 따라서 지도교수님이 보기에 상당히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민구를 불러 교수님이 한마디 하신 모양이었다.

교수: 민구아. 너는 술상무도 못하잖아.

술이라도 잘마시면 술상무라도 가능한데 술도 못 마시니 공부라도 열심히 하라는 충고였다. 그런데 마음이 여린 녀석은 이 충고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 뒤에는 정말 열심히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래서 맥주 한잔, 소주 한잔이 치사량이었는데 지금은 맥주 500에 소주 세잔은 거뜬히 마신다고 한다.

술, 마시면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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