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사이트는 박혁거세가 박씨 중 어느 본관의 시조인지 알고 싶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알게된 사이트가 뿌리를 찾아서이다. 이 사이트를 통해 박혁거세모든 박씨의 시조라는 것까지 알았다. 또 내 본관인 김해김씨에는 어떤 정보가 있는지 찾다가 김해김씨(우록)는 의외로 가등청정(加藤淸正)의 좌선봉장이었다가 귀순한 일본인 김충선을 시조로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다른 성씨에 대한 정보도 이것 저것 확인해 보니 이 사이트에서 제공하고 있는 성씨에 대한 정보가 상당히 풍부했다. 특히 나도 모르는 김해김씨에 대한 정보도 많아서 우영이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 내 본관과 우엉맘 본관에 대한 정보 중 유래 부분만 인용했다.

:: 김해김씨(金海金氏)(가락) :: - 뿌리를 찾아서

시조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이다. 가락국에는 본래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 등 아홉 촌장이 각 지방을 다스렸는데 서기 42년 3월에 구지봉(龜旨峰)에서 이상한소리가 났다. 아홉 촌장과 사람들이 올라가자 "산봉우리에 흙을파며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라. 만약 머리를 내지않으면 구어먹겠다.'라고 하면서 춤을 추면 곧 임금을 맞이할 것이다."라고 하자 그대로 하였더니, 자줏빛 줄이 하늘에서 땅에 닿아 있었다. 그 끈의 끝에 붉은 보자기에 금으로 만든 상자가 싸여 있으므로 이것을 열어 보니 둥근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

이것을 아도간의 집으로 가져가자 다음날 이 알이 여섯 어린아이가 나왔는데, 제일먼저 나온 아이 이름을 수로(金首露, 42~199.3.23)로 하고 그달 보름에 왕으로고 나라 이름을 가락(대가야)이라하고,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기 5가야의 임금이 되었다고 한다. - 이상은 "삼국유사" 중에서 -

그중 먼저 나온 수로는 금알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으로 하였다. - 이상은 "개황력(開皇曆)" 중에서 -

이 수로왕을 시조로하는 성씨가 바로 김해김씨이다. 김해는 가락국의 고도로서 지명도 여러가지로 변했으나 고려 충선왕 때 김해부가 설치됨으로써 본관을 김해로 하였으며 가락김씨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수로왕이 즉위 7년에 아유타국(현재 인도 중부지방의 고대국가)의 공주인 허황옥(許黃玉, 33~189.3.1)을 왕비로 맞이하여 10남 2녀를 낳았는데 맏아들은 김씨로 왕통을 잇고 두 아들은 왕비의 간곡한 요청으로 왕비의 성인 허(許)씨(태인허씨)를 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일곱 아들은 불가에 귀화하여 하동 7불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허씨에서 갈라져 나온 인천이씨가 있으며 세 성씨가 다같은 혈족이라며 종친회도 '가락중앙종친회'로 하였다.

김해김씨의 중시조는 수로왕의 12세손인 김유신(金庾信)장군이다. 김유신은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증손자이며 무열왕의 딸 지소 부인(智炤夫人)과 혼인하였다. 할아버지는 신라의 장군이자 각간(角干)인 김무력(金武力, 구형왕의 막내 아들)이고, 아버지는 당대의 이름난 장군인 김서현(金舒玄), 어머니는 진흥왕의 동생인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이다.

:: 여산송씨(礪山宋氏) :: - 뿌리를 찾아서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에 진사로 은청광록대부 추밀원부사이며 중시조인 송례는 유익의 4세손으로 고려 원종때 문하시중 판전리사사상장군으로 여양(여산)부원군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송례를 중시조로하고 1세 조상으로 하였으며, 여산을 본관으로 하였다.

다소 의외이지만 여산송씨에 대한 유래는 너무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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