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대학원 시절의 일이니 이미 10년도 더 된 것 같다. 당시에는 인터넷 게시판 보다는 han.rec.humor와 같은 뉴스 그룹에 글이 더 많이 올라올 때였다. han.rec.humor에 누군가 '좃도의 전설'이라는 글을 올렸다. 처음에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좃도라는 섬이 있었다"는 간단한 글이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은 사람이 새로운 내용을 계속 추가해 나가면서 마침내 '좃도의 전설'이라는, 지금도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는 '성인 유머의 걸작품'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목차

  • 집단지성
  • 좃도의 전설
    • 좃도 王國의 전경
    • 좃도의 자연
    • 좃도의 종교와 철학 그리고 대학
    • 좃도의 문화
    • 좃도의 전설
    • 좃도의 멸망

집단지성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대학원 시절의 일이니 이미 10년도 더 된 것 같다. 당시에는 인터넷 게시판 보다는 han.rec.humor와 같은 뉴스 그룹에 글이 더 많이 올라올 때였다. han.rec.humor에 누군가 좃도의 전설이라는 글을 올렸다. 처음에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좃도라는 섬이 있었다는 간단한 글이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은 사람이 새로운 내용을 계속 추가해 나가면서 마침내 좃도의 전설이라는, 지금도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는 '성인 유머의 걸작품'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나도 처음 좃도의 전설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오랜 만에 혹시나 싶어서 인터넷을 찾아 보니 역시 아직도 인터넷을 떠 돌고 있었다. 한 가지 주의할 일은 '좃도의 전설'에는 수 없이 많은 판본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올린 판본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좃도의 전설

[ 아득한 먼 옛날 울릉도 독도 사이에 좃도 라고 불리운 환상의 섬이 있었으니 좃도에 대한 구구한 전설은 아직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좃도 王國의 전경

이 섬에는 [FucKing]이라는 왕과 [벌리자배스]라는 왕비가 살고 있었는데 그가 사는 궁궐의 이름이 [자궁]이었다. 자궁의 꼭대기에는 왕국을 상징하는 18세기(십팔세끼)가 휘날렸고 그 깃발 아래 좃도의 최정예 [좃도방위군]이 철통 같이 자궁을 수호하고 있었다.

FucKing이 즉위한지 18년 째 되던해 왕궁이었던 자궁의 앞 뜰에서는 그것을 축하하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18명의 무용단은 식전행사로 행위예술의 일종인 [자위행위]를 시작하였고 귀족들이 타고온 조까지馬와 [빼지馬]가 나란히 서서 자태를 뽑냈으며 귀부인들은 좃도섬의 귀염둥이 강아지인 [좃도모르는 개]를 안고 있었다. FucKing은 감개무량하여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쌍둥이 연 두개가 날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던 Fucking이 중얼거렸다.

"어허~ 내 좃도 Fucking 18년에 저런 쌍연은 처음 보는군.."

자궁의 뒤뜰에는 두개의 연못이 있었는데 각각 자줏빛 연못과 보배로운 연못이라는 뜻을 지닌 [자지]와 [보지]라 불리웠고 이 두개의 연못 사이로 [포르노]라는 아름다운 산책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왕은 [유방]이라는 침전에 기거하였고 하나뿐인 외동딸의 이름은 [조세피나] 공주였다. 공주의 방을 들어가려면 [씨bell]을 십팔번 눌러야 했고 방안에는 한 달에 한번씩 소원을 들어준다는 [월경]이라는 보물거울이 있었다.

좃도의 자연

좆도의 앞바다 [삽입海]에는 아름다운해안이 있으니 [썬오브비치]였으며 시냇 물은 [좃도크내]였다 자궁 앞에는 이 섬을 동서로 가르지르는 [좃꼴리는대路]와 남북을 시원하게뚫은 [좃까는대路]가 있었고 좃도의 비옥한 토지에는 좃도의 특산물인 [니기미]라는 쌀이 생산되었는데 이 쌀은 워낙 맛이 좋아 [좃도니기미]라는 고유 브랜드로 이웃 섬인 [씹도]를 포함, 전세계에 수출되었다 한다.

이[니기미]를 운반할 때는 씨보댕이와 좃도의 고유한 운송수단인 좃빠지게(지게의 일종)가 사용되었는데 이 작업이 워낙 고되어서 현재까지도 힘들 때 '좃빠지게 힘들었다'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는 정도이다.

좃도의 초원에는 미나리과 에 속하는 [좃나리]라는 채소가 있었는데 이를 좃도 앞바다의 [빨어][박어][핥어][씹어][오르가지미][콘돔] 등 고유 어종과 함께 매운탕을 끓이면 맛이 일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좃도의 개펄에는 바다 게의 일종인 '좃나게'와'좃도아닌게'가 살고 있었는데 이 게들은 워낙에 걸음이 빨라 잡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이 게들을 잡아 온 어민들의 애한을 담은 '좃나게 정말 좃빠지네'와 이 게들을 잡아 온 어민들의 애한을 담은 '좃나게 정말 좃빠지네'와 '니기미좃도아닌게'라는 민요가 널리 불리 워졌다고 한다. 또한 이 섬에는 이름난 광천수가 있었는데 이름하여 '좃정리 니미랄 워터'였다.

숲이우거진 [꼴林]에는 [씹새] [씹까치] [조까치]라는 텃새들이 살고 있었는데 [씹까치]와 [조까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까치의 일종으로 일반적인 방법으로 잡을 수 있었지만 [씹새]만은 워낙 유별나서 좃도의 희귀광물인 [씹탱구리]와 [좃탱구리]의 특수합금으로 만든 [씹창]으로만 잡을수 있었다고 한다.또한 밤마다 집채만한 호랑이인 [강간범]이 내려와 민가에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

좃도의 종교와 철학 그리고 대학

좃도에는 불교가 융성하였는데 당시 최대 규모의 [복상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 절에는 [꼴려]라는 승려와 [마구할타] [두루할타] [몽정대사] [사정대사]가 보살을 시주하고 있었다.

한편 철학도 발달하여 좃도의 명문대학 [좃도콜리지]와 소크라테스와 필적할만한 철학자인 [클리토리스]가 [오르가즘]이라는 독특한 학풍을 주창하고 있었다. 그는 좃도의 명문 여자대학인 [생리大]에도 출강하고 있었으며 철학 외에도 공학에도 조예가 깊어 근간이 된 공장자동화 시스템인 [마스터 베이션] 공업을 최초로 도입하였다. 그 시스탬을 이용하여 좃도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상품이 있었는데 그이름하야 약은 "좃까라 마이신" 숙녀복은 "매우 꼴리지"였다.

좃도의 문화

이 좃도의 겨울엔 눈과 바람이 스키가 유행했는데 특히 유명한 스키로는 스키의 원조라고 할수 있는 [시발스키], 개경주용인 [개놈의 스키] 2인승인[쌍놈의 스키] 그리고 10인승인 [씹스키]가 있었다.

또한 좃도의 오토바이는 '부랄-부랄', 앰불런스는 '지브-지브-지'라는 요상한 소리를 냈다고 한다. 그리고 헬기가 '바가-바가'하며 지나갈 때는 산새들이 빼에-빼에'하면 화답 했다고 한다.

좃도에도 캬바레가 있었으니 바로 [니주가里]에 있는 [씹빠BAR]였다. 그빠에는 좃도섬의 명가수 [좃내논]이 있었다. 좆도에는 유명한 민가가 두채 있는데 그 두집의 주소는 [자지道 크郡 만지面 커지里와 보지道 넓郡 박으面 열리里]라는 이상한 주소를 가지고 있었다.행정구역은 [자지道 빨面 꼴리里]

그리고 좃도의 교통요지인 좃도 역전 뒤에는 사창가가 있었는데 이 마을의 이름이 [빠구里]였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지금까지도 그런속에 갈 때는 '한 빠구리 틀자'라는 말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좃도의 전설

이 섬 동쪽으로연결되는 [좃꼴리는대路]가다보면 환상의 [좃도바위]가 있었는데 이 바위는 소원을 빌 때 항상 소원끝에 '--됐네' 라고 해야만 소원을 들어 준다는것이 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한 총각이 있었는데 그의 소원은 '큰물건(?)'이었다. 이 총각은 결국 석달 열흘만에 그 바위를 찾고서는 계속 소원을 말했으나 역시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왔다갔다 하다보니 거의 1년이 넘어갔다. 이에 좃나게 열받은 사나이는 시발시발거리면서 뒤로 돌아서다 돌부리에 걸려그만 땅바닥에 코를 쳐박고 말았다. 이에 열받은 사나이 하는 말

"에이! 시발 좃됐네."

이렇게 해서 정말[좃]이되어 [좃도바위]가 생겼다는. 지금도 많은 사학자들이 연구와 그 바위를 찾기위해 그렇게도노력을 한다는 풍문이 얼핏 들리고 있다.

좃도의 멸망

절대군주 FUCKING이 사망 후 좃도에는 권력쟁탈을 위한 쿠데타가 발생했다. 왕의 절대신임을 받던 두 장군인 '강간찬'장군과 '윤간'장군이 급기야 서로의 군대를 몰고 [빠구리 벌판]에서 일대 격전을 벌인 결과 '윤간'장군은 '강간찬' 장군의 막강한 병력에 밀려 [씹당나구] 됐다고 후세 역사가는 전하고 있다.

이러한 환상의 섬 좃도도 언제부턴가 폭풍이 자주 몰아쳐 살기가 힘들어졌다. 그리하여 이웃한 섬 [씹도]를 잇는 '성교'라는 다리가 건설되었고 그 다리의 끝에는 좃도의 끝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되는 '여기서부터는 좃도 아님'이라는 푯말이 걸려있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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