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상경한 후 매년 한번씩 고향에 내려갔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곡성역에 내려서 하루에 두번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가곤했다. 환경을 무시하고 세워진 땜때문에 지금의 보성강은 얕은 개울처럼 변했지만 어렸을적 기억으로는 꽤 수량이 풍부했던 강이었다. 가끔 장마로 보성강의 다리가 끊어진 경우도 있었다. 이 때에는 나룻배를 타고 보성강을 건너 걸어서 갔다. 어린 나이에 꽤 긴 거리지만 하나밖에 없는 손자를 끔직히도 아끼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난다는 기대감에 힘든줄도 모르고 걸어갔던 것 같다.
나이가 들고 세상에대해 조금씩 알아가던 시절, 우리 사회는 전라도 사람에대한 수많은 편견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거주지에서 신체검사가 가능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는 신검 통지서를 받으면 본적지로 내려가 신검을 받아야 했다. 이 것을 불편하게 여긴 아버님께서 본적지를 당시 거주지였던 서울시 동대문구 휘경동으로 변경해 놓으셨다. 동사무서에서 서류를 발급받던중 본적지 얘기가 나왔다. 본적을 옮긴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원래의 본적을 서울로 옮겼다고 하자 대뜸
전라도 사람이죠?
라고 되묻는 것이었다. 그렇다.
전라도 사람, 여지껏 이 땅에 살면서 한국 사람과 전라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지금은 많아 달라졌겠지만 예전에는 본적이 전라도면 취직도 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편견은 어디에서나 겪을 수 있었다. 나를 아껴주시던 친구 아버님도 아무런 이유없이 전라도 사람을 싫어했다. 장인어른도 마찬가지이다. 전라도 사람 얘기만 나오면 곧잘 전라도 사람을 나쁘게 얘기하곤 하신다.
하루는 애 엄마가 장인 어른께 전라도 사람한테 피해를 입은 것이 있냐고 여쭌적이 있다. 장인 어른의 답은 없다는 것이었다. 전라도 사람한테 아무런 피해를 입은적은 없어도 전라도 사람은 싫어하신다.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은 본적을 많이 바꾼다.
김대중씨주3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의 일이이다. TV에서 한 시장 아주머니가 나와 흐느끼면서
이제는 원도 한도 없다
고 하신 모습을 본적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기때문이 아니다. 광주의 맺힌 한을 풀수 있기때문도 아니다.
이제 전라도 사람도 전라도 사람이 아닌 한국 사람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다.
전라도 사람으로 산다는 것
이 것은 지역 감정의 벽주4을 타고 수많은 편견을 등에지고 산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나도 본적을 옮겼다. 그러나 본적을 옮긴 수 많은 전라도 사람들이 그렇듯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자랑스럽다. 묻힐 땅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 곳에서 태어나서도 아니다.
그냥. 전라도가 좋다.
전라도 사람에대한 편견과 압제는 고려 태조 왕건부터 비롯됐다는 견해가 있다. 태조 왕건은 끝까지 자신에게 항거한 전라도 도민을 절대 등용하지 말것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역시 이러한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아 1000여년간 전라도는 비주류로서 수많은 편견속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설에 불과하며, 태조 왕건이 그런 유언을 남겼다는 증거는 없다.
사실 전라도 사람에 대한 편견은 남에게 지기 싫어하며, 강한 생활력으로 빠른 시일내에 자리잡는 전라도 사람들의 자립심과 생활력, 여기에 전라도 사람 특유의 반골 기질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TV에서 방영했던 5공화국을 보면 전대(머리)통령이 공수부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반 시민일 수 있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사실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긴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
반골기질이 강해 평상시에는 다른 사람들의 말도 듣지 않고 백가쟁명(百家爭鳴)을 일삼기도 하지만 어려울때면 함께 뭉처 일어날 수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이다주5.
전라도 사람은 보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