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Mad Bulls) 폐기일, 남음 | 조기 폐기 - 배너 달기 - 광우병 국민대책 회의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 볼테르(프랑스 계몽 사상가).
글을 읽어 보면 알 수 있지만 비기독교도라고 해도 상당히 수긍가는 내용이 많다. 구약의 야훼에 대한 폭력성을 인정하면서 예수 이후의 사랑의 하느님을 들고 있다. 신약과 구약이 서로 배치하면 신약을 우선함으로서 사랑의 하느님을 앞으로 배치하는 융통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 성경이 개신교도들처럼 문자 그대로의 진실이 아닌 진실, 과장, 비유임을 얘기하고 있다.
과연 장로교 목사들 중에 이 신부님의 글처럼 비기독교도까지 수긍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우리 나라 장로교도를 상대하다 보면는 모르는 것이 한 가지 있다는 생각이들곤한다. 바로 역지사지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방법을 아예 모른다. 그리고 개신교에 대한 비판은 모두 비판하는 사람이 성경을 몰라서 한 것으로 치부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잘못 없음을 항변한다. 이런 잘못이 밝혀지면 무조건 이단으로 몬다. 두타 스님의 머리에 손을 얹은 사람에 대한 장로교도의 입장은 그 사람은 이단이다.
문제는 이런 이단을 양산하는 장로교의 시스템(쉽게 교회를 만들 수 있는)과 이런 미친 신도를 양산하는 장로교의 시스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줄 모르는다는 점이다. 이런 개신교도와의 논의는 정말 끝이 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논의의 시작과 끝을 아전인수로 하기때문이다. 예수의 실존은 성경이나 기독교사로서는 절대 입증할 수 없다. 예수가 역사적인 인물이기 위해서는 예수는 역사에 나타나야 한다.
예수 당시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의 업적록에 따르면 아우구스투스는 평생 세번의 국세 조사(인구 조사)를 했다. 기원전 28년, 기원전 8년, 서기 14년. 모두 예수가 태어난 해와는 거리가 있으며, 그 대상도 외국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 것이 아니라 모두 국내에 있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했다. 이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때 예수가 허구이거나 성경이 틀린 것중 하나이어야 한다.
그러나 개신교도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오로지 성경과 기독교사를 근거로 예수가 태어났을 때 인구 조사가 있었다고 강변한다. 이렇게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면서 예수를 실존이라고 강변하는 것을 보면 역시 개신교도는 눈감고 귀닫고 입만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얘기가 잠시 옆길로 샌 것 같다. 다음은 위의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한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손희송 신부님의 답변이다. 기독교도이든 비기독교도이든 상당히 타당성있고 수긍이 가는 답변이다.
장로교도 두 부류가 있습니다. 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장로회. 두 교단 간에 신학적 입장이 다른데 우리가 흔히 장로교라고 하는 쪽은 예장으로 보수적인 교회가 대부분입니다. 이와 달리 기장은 성경 해석에 있어 열려 있기 때문에 위의 신부님과 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신학의 스펙트럼은 다양한데, 우리나라에서는 보수교단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기장 등 진보교단의 견해를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하다 보수적이고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에 지쳐서 기장교단이나 감리교단의 열린 교회로 적을 옮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손희송 신부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가톨릭 신자의 한사람으로서 성경의 내용이 의문이 되는 부분이 간혹 있습니다.
제시하신 부분 역시 제 아무리 열심히 믿는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글자 그대로 보면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이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의문을 가진다고 하여 그것이 믿음이 약하다거나 사탄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인간은 지성과 이성을 가졌으므로 어떤 사건을 바라보며 의문을 가지고 그 의문을 논리적으로 풀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론 논리가 아닌 믿음의 문제로 받아들일 부분도 있습니다. 신부님말씀대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풀리는 부분도 있더라는 것을 저도 느낍니다.
무조건적인 믿음 강요는 저는 반대입니다.
성경해석에 있어서도 전체를 이해하고 세부적인 것을 바라볼때 올바로 이해할 수 있지, 세부적인 것에 매달려 해석하다보면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와 메시지를 왜곡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텍스트는 영을 받아 적은 것이라 단 한치의 오차도 없다는 개신교도들이 많습니다. 거기에 비해 카톨릭의 의견은 훨씬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북천2007/08/11 15:16
아프간 사태의 여파인지 곳곳에 신앙관련 게시물들이 올라오는군요.
신약에 나오는 구절들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가복음 9장1절]
"이 동네에서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10장 23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도 있다."[누가복음 9장 27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없어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가복음 21장 32~33절]
"분명히 말해둔다. 이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이 이 세대에 내리고야 말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36절]
모두 예수가 살아 생전에 했던 말들입니다.
읽어보시면 무슨 의미인지 아실거라고 봅니다.
이미 심판의 날은 지난거나 다름없습니다.
예수가 거짓말장이가 아니라면요.
위에 장로회의 두가지를 말씀하신 분이 있기에 덧붙여서 씁니다.
기장은 성서해석에 있어서 열려있는게 맞습니다.
그네들의 주장은 '성서는 영감을 받아 쓴 것이지만 필자가 첨삭한 부분도 있다.'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서중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그 부분은 영감을 받은 내용이 아니다라는 것인데...
어느 부분이 영감을 받은 부분인지 누가 판단을 하는가에 의문이 생깁니다.
각각 교단, 교회가 자신들이 유리한 부분만 영감을 받은 부분이라고 주장하겠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도 아니고, 해석자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이 성서의 의미일까요?
또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는 엉터리 책에 최고의 권위를 메기고 있는 종교는?
요즘 더욱더 맹신을 강요하는 종교 관련의 사람이 많이 보여서인지, 신부님 글의 "묻고 대답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봅니다"는 구절이 특히 눈에 들어오네요. 그 구절과 이후의 의문을 해소한느 과정이 신앙 생활의 선상에 있기를 권하는 내용은, 카톨릭이나 개신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도 (용어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해당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대상 종교 안에 진리가 있다는 확신이라는 면은 좀 어려운 얘기가 되겠습니다만... 그냥 덧글로 남겨져있었으면 못 보고 지나쳤을텐데 이렇게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