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바로 아버님이 사주신 인두다. 큰 아들에 대한 기대, 그리고 그 기대에 못미치는 큰 아들이었기 때문에 아버님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누나와 동생에 비해 구박을 많이 받았다. 이런 아버님이 사오신 인두. 한번 내색도 하지 않은 인두를 아버님이 어떻게 알고 사오셨는지.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꾸지람도 자식에 대한 큰 관심이라는 것을. 사실 이 인두는 필자가 평생 공학이라는 외길을 갈 수 있도록 한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12살에 처음 받은 인두로 동네 아이들의 태엽 자동차를 건전지 두개에 유선 리모콘으로 움직이는 전동 자동차로 바꾸어 주었다. 이때부터 주 관심사는 공학이었고 그외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필자의 성적으로는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전자 공학과는 절대 갈 수 없다고 했지만 그렇다면 재수를 해서 가겠다고 우겨서 전자 공학과에 입학을 했다.
그러나 막상 가본 전자 공학과는 필자가 상상하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인두로 땜질하고 테스터로 찍어만 보면 될 줄 알았지만 의외로 전자 공학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물리와 수학에 매달려야 했다. 처음으로 2학년때 배우기 시작한 전공도 비슷했다. 당연히 전공에는 흥미를 잃었다.
전공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3학년때 계산기 구조를 배우면서 부터였다. 결국 89년 컴퓨터를 구입하고 컴퓨터에 매달렸다. 매니아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한번 매달리기 시작하면 끝을 봐야 했다. 이런 성향때문에 컴퓨터를 시작한지 6개월만에 컴퓨터에 대해서는 누구 보다 잘알지는 못하지만 누구 못하지 않는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
필자는 지금도 컴퓨터를 좋아하고 컴퓨터에 관련된 일을 하고 주로 컴퓨터로 작업해서 먹고 산다. 40을 넘긴 나이다. 이 연배에는 컴퓨터에 대해 잘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나 다른 사람보다 더 열정적으로 컴퓨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이유는 지적 호기심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원인은 어렸을 때 아버님이 사주신 나무 인두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아버님이 필자를 인정해 준 선물이고 또 돌아 가신 아버님을 생각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아버님의 기일이다. 생에 대해 끝까지 연을 놓지 못하셨던 아버님. 이제와 생각해보면 40에 가까운 나이에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필자에 대한 걱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2005년 설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 나셨으니 벌써 아버님이 계시지 않은 세상에 산 것이 만으로 삼년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세월이 지날 수록 아버님이 그리워 지는 것은 내 생생의 가장 큰 선물을 아버님께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님을 사랑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살아 생전 한번도 드리지 못했던 말이 있다. 남자라는 이유로 어색하다는 이유로...
아버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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