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등장한 것이 이른바 프로스포츠이다.
국민은 정치의 결과보다는 경기의 결과를, 정책보다는 경기 전략을, 실정보다는 자기팀의 연패에 더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었다고 해도 82 년 개막된 프로야구는 국민적 관심과 성원속에서 시작되었고, 그 첫해 박철순이라는 스타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길이 남을 것임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년우승과 스타 탄생은 길고 긴 터널의 시발점이었다. 그 후 박철순은 허리 디스크로 인한 부상,수술, 재기를 반복했다.
전성기때의 컨디션을 회복했다고 그의 팬들이 좋아할무렵, 계속되는 수술로 지게된 빚을 갑기위해 CF 를 촬영하던 중 또 다시 부상을 당해 다시 수술과 재기를 거듭 해야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쳐서라도 포기했을 만한시간이 지났고 그러한 시련은 신의 질투인양 계속되었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갈 때쯤이면, 이제는 포기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 쯤이면 어김없이 마운드에서 자신의 마지막 투혼을 불태우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수이탈의 주동자로 선수생활이 막막해질 때, 이제 그의 투혼을 다시 볼 수 없겠구나하는 생각에 조금은 아쉽고, 그의 투혼이 그렇게 사라져야 한다는 것에 더할 수 없는 연민을 느꼈었다.
그러나 다음해,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OB의 우승과 검게 주름진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보면서 다시금 그의 투혼과 신념, 야구에 대한 끝없는 열정앞에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 기나긴 시련의 터널을 뚫고 다시 우리 앞에서 눈물 짓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 포기하지 말아야 할 때는 힘들어 지칠때가 아닌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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